첩첩산골서 구십평생 보낸 할머니 "바다가 저렇게 넓나"
♥구십평생 유일한 여행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 젊음의 계절이라 하여 산이나 계곡, 바다는 인산인해다.
지난여름, 가족여행을 계획하면서 할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가려고 했더니 "젊은이들한테 밟혀 죽을라꼬?" 하면서 할머니는 한사코 거절하셨다. 속내는 "너희들끼리 재미나게 놀다 오라"고 하시는 거였는데 딸아이가 한마디 거든다. "할머니, 안 밟아요. 왜 가만있는 할머니를 밟아요?" 해서 웃었다. 솔직히 할머니를 모시고 여름바다 가기는 무리였나 싶어 그해 겨울 바다를 보여 드렸다. 아흔다섯 해를 살아오시면서 할머니는 바다로 나갈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마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기껏 면사무소에 있는 보건소에 가는 일 빼곤. 첩첩산골에서 일평생을 보내신 할머니는 바다를 그저 '물이 많이 고인 곳'으로만 알고 계셨다. 아버지도 마찬가지, 홍수로 냇물이 넘치는 것은 보아 왔지만 집채만 한 파도와 갈매기 끼룩끼룩, 통통 멸치배가 유유히 떠다니는 바다를 보신 적이 없었다.
뉴스 화면에 잠시 나오는 바다 그림과 느낌이 다르다며 감탄을 쏟아내셨다.
"바다가 저렇게 넓나? 또 얼마나 깊을꼬?" 할머니의 궁금증에 딸아이가 또 나섰다.
"할머니, 돌 던져 볼게요. 얼마나 깊은지 소리 한번 들어보세요?" 하고 돌을 던졌다.
"아이구야, 엄청시리 깊은갑따. 아직도 돌이 바다 속으로 내려가고 있는갑따…."
아흔다섯의 증조 할머니와 열한 살 증손녀의 대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겨울 바다를 보았고 할머니는 아스라이 먼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를 동경하듯 바캉스 계절에 TV로 바다 그림을 보면서 가슴속에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바다 그림을 떠올리신다.
할머니의 유일한 여행이었고 추억인 셈이다. 겨울 바다는 조용해서 바다를 찾은 이에게 희망을, 용기를, 사랑을 살며시 전해 주는 듯하다. 그래서 따스하게 느껴져 기억 속에 오래 남는가 보다. 지금도 시골에선 이 더운 날, 할머니는 겨울 바다를 추억하고 계실 테다. 갈매기 끼룩끼룩 날개를 쫙 펴고 바다 위를 유유히 나는 모습을 연상하시면서 더위를 물리치고 계시겠지!
양일용(대구 달서구 용산동)
♥거북선의 과학적 설계에 놀라
대덕노인복지회관 분들과 진해로 나들이를 갔다. 구마고속도로를 달려 진해로 향하는 길 가에 자연은 녹음을 더해 가고 있었다. 진해 해군기지에 도착하니 우리를 위하여 안전관 두 분이 마중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뒤따라서 거북선에 올랐다. 내부의 구조 해설을 들으니 신기하고 묘하며 그 설계가 과학적인 것에 자못 놀랐다. 뒤이어 해사 박물관은 해신 장보고의 활동과 충무공을 비롯한 그 후예들의 활약과 나라 사랑의 얼을 배울 수 있는 역사의 보고였다. 고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에 찾아가니 고즈넉하게 정적이 감돈다. "겨레여, 우리는 일민이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소리 높여 부르짖던 그분은 가신 지 오래였다. 제황산 공원, 탑산을 엘리베이터로 올랐다. 탑에서 내려다보는 진해는 평화롭고 아름다워 한 폭의 동양화이다. 진해만의 바다는 바다 사나이 해군들의 보금자리였다. 거북선의 위풍당당함에 파도도 멀리 물러날 것 같았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딸아이는 피부 벗겨져 고생
2008년, 강원도로 3박 4일 여름 휴가를 떠났다. 강릉은 휴가 보내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시원했던 월정사의 계곡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계곡보다 바다를 더 가고 싶어했다. 해수욕장에 갈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갔다. 많은 사람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놀기에 바빴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피부가 따갑고 벗겨져 한참을 고생해야 했다.
2009년 휴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부산으로 떠났다. 그런데 우리가 찾은 광안리 해수욕장은 먹구름에 덮여 있었다. 모래만 한참을 만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추워도 간간이 바다 속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포기했다. 2010년 휴가는 경주 쪽으로 갔다. 조금 이른 감은 있었지만 해수욕장은 개장을 했다고 했다. 문무대왕릉도 볼 겸 해서 봉길 해수욕장으로 갔다. 하지만 몇 명이 바다를 거닐고 있을 뿐 해수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가족에게 바다는 여러 가지의 모양으로 다가왔고,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바다를 보고 싶다.
박영희(대구 수성구 황금1동)
♥7번국도 달리면 '추억 휴가'
남편이 울진에 있을 당시 우리는 남들이 하는 연애를 했다. 여름 휴가를 받아서 남편이 있는 울진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포항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니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안 바다가 남편이 있는 울진까지 펼쳐져 있었다. 지루한 줄도 모르고 바다만을 바라보면서 울진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남편의 차를 타고 가는 도중 내가 올라오면서 봐왔던 바다 이야기를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자 남편은 "바닷가 들렀다가 갈까?" 하면서 울진 앞바다로 드라이브를 갔다.
가까이서 보는 바다는 예전에 보던 바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바닥의 조약돌이 훤히 보이는 것이 너무나 깨끗했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감탄을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남편은 "이제 바다 실컷 볼낀데 뭐. 우리 결혼하면 스킨스쿠버도 배우자" 하면서 싱긋이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 뒤에 결혼식이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도 좋은데 푸른 바다를 매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결혼했지만 울진의 깨끗한 푸른 바다를 오랫동안 볼 수는 없었다. 결혼식 전날 안타깝게 남편은 대구로 발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상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한동안 그 바다를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결혼 10년 만에 남편은 "우리 아이들 데리고 동해안으로 올라갔다 올까"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7번 국도를 타고 포항에서 영덕, 울진을 지나 강릉으로 추억의 휴가를 떠났다.
김성은(대구 달서구 이곡동)
♥음주가무로 밤 지새운 친구는…
올여름 모임 장소를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정했고, 도착해서 본 바닷가는 모래가 아닌 자갈로 깔려 있어 놀기엔 좋았지만 파도가 엄청 거세 서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를 타고 어설픈 수영을 해댔다. 일기예보에선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열대야에 숙소에서 잠을 설치느니 바닷가에서 시원하게 보내기로 하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늦은 시간까지 음주가무를 즐겼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려고 모여 앉았는데 친구 한 명이 보이질 않아 모두 놀랐다. 혹시나 파도에 쓸려가지 않았나 싶어 친구를 찾느라 난리가 났고 해양경찰서에 신고까지 했다. 수만 가지 상상에 눈물까지 글썽였고, 가슴을 졸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바닷가 앞 모래사장에서 모르는 이의 텐트와 텐트 사이에 낯익은 한 사람이 옆으로 누워 코를 골고 있지 않은가? 어이가 없어 친구의 모습을 몇 초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깨어난 친구는 자갈돌에 배긴 통증을 호소하며 '궁시렁'거리기까지 했다. 친구가 왜 여기에 누워 잠을 자게 되었는지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고, 당사자도 의문이라고 했다. 어제 저녁, 분명 취기가 오른 탓에 혼자 복불복게임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마무리 지었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약간의 에피소드로 즐거운 추억을 남긴 여행을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그 바다에서의 추억은 나에게는 아찔하면서도 유쾌했다.
강민정(대구 남구 봉덕3동)
※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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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용기(대구 북구 침산2동)
다음주 글감은 '소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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