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살이 좁은 방서도 화가는 꿈을 꾸었다
화가들은 흔히 이젤 앞에서 선 자화상으로 혹은 아틀리에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킨다. 사람 없이 빈방에 놓인 사물들만으로, 또는 벗어놓은 낡은 구두를 통해 작가의 실존적인 상황을 나타낸 고흐의 작품은 유명하다. 이중섭도 피란지에서 혼자 기거하는 자신의 모습을 방안의 광경과 함께 익살스럽게 그린 적이 있다.
이 작품도 좁은 방 한쪽 구석에 그림 도구들을 쌓아두고 작업하는 화가의 삶을 비춰준다. 말아놓은 종이들과 벽 여기저기 붙여놓은 스케치들, 바닥에는 먹과 벼루와 컴퍼스와 삼각자, 그리고 물감이 들었을 병과 책들, 또 알이 굵어 보이는 큼지막한 안경 등이 어지럽게 늘려있다. 이 빈약해 보이는 것들이 그의 예술을 탄생시킨 도구들이자 생활을 이어가게 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림은 이상을 추구하며 절박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방편이다. 화가는 그 일로 생계도 잇고 그 안에서 자유를 느끼며 힘든 것을 잊는다. 마치 숙명처럼 주어진 그 영역에 대해 이 작품은 결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지만 동시에 창작의 산실이자 자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듯하다.
화가의 직업의식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며 작품의 정신적 깊이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내를 주제로 그린 작품들에는 공간의 아늑함에서 누리는 호사한 취미를 반영한 것이 많은데 가까이 둔 친밀한 대상들을 선택하고 벽지나 피륙의 무늬, 애장품의 표면 질감 등에 눈이 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핍한 시대의 이 화가는 보다 근본적인 것에서 자신을 확인시키며 또 그 피상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내면적이며 심리적인 공간을 향하는 것 같다. 화가로서의 사명과 직업의식의 선택이다.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한 렘브란트의 그림 중에 다락방에서 옷을 두껍게 껴입고 이젤 앞에 서 있는 화가의 초상이 있다. 벽은 헐어서 금이 가고 회가 떨어져 나가 몹시 궁상에 찌든 작가의 경제적 상황을 드러낸 것도 같지만 다른 한편 손에 쥔 붓과 벽에 걸린 팔레트 한 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 방이 오로지 화가의 지성만이 존중되는 매우 정신적인 분위기여서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작품 역시 작가라는 존재의 실존적 상황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형태의 세부묘사나 정확한 비례에 얽매이지 않고도 사실적이면서 무관심한 관조적 자세로 자유롭게 그려낸 듯해 편안하게 볼 수 있다. 크레용이란 소박한 재료와 기교를 부리지 않은 선묘와 채색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힘든 노동을 표현할 때는 투박한 선이 매끈한 선보다 오히려 진실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것임을 강조한 바 있는 고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노란색은 희망을 나타낸다. 그런데 벽 일부에 검은 색의 덧칠이 있어 그것이 곰팡내 나는 구석방의 실제를 암시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유보된 미래의 어두운 희망을 상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김영동(미술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