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는 내 운명…"라켓 들 때 가장 행복"
4일 대구 수성구 범어공원 내 정구장.
흰색 모자에 안경을 쓴 고령의 할아버지가 정구 라켓을 잡고 날렵하게 공을 받아치며 상대 코트 앞 커팅(깎아치기) 기술로 포인트를 올렸다. 할아버지는 후위에 있는 선수와 '하이 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했다.
87세의 나이지만 정구에 빠져 사는 김연우 할아버지.
이런 나이에 어떻게 정구를 할까 궁금하지만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정구는 내 운명입니다. 40년 넘게 이렇게 살았거든요. 정구를 안 치면 몸이 찌부듯해서 못살아요. 그래서 매일 이 정구장으로 꼬박꼬박 나오죠"
대구정우회 회원인 김 할아버지는 이 정구장을 이용하는 3개 클럽 200여 회원 중에서 최고령자다. 그러나 매일 오전 10시쯤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회원들과 복식경기로 한판 붙는다. 나이에 비해 힘든 운동이지만 김 할아버지는 하루에 2, 3세트 경기를 무난히 소화해 낼 만큼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다.
"아직 건강에는 끄떡없어요. 정구공만 보면 힘이 솟거든요. 저는 승부욕이 강해 경기를 했다 하면 거의 이겨요. 내 커팅 기술은 누구나 인정하는 주특기죠."
현역 선수 중 대구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고 자부하는 김 할아버지는 아직도 각종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올봄 수성구청이 주최한 대구 구·군청 대항 정구대회에 출전했으며 전국대회에도 계속 참가할 계획이라고 했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김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테니스를 쳤다. 1930년대 일본에서 공업학교를 다니며 소프트 테니스를 접한 뒤 1972년 공직 생활을 마친 뒤 칠성테니스클럽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시작했다는 것.
지난 40년간 전국대회나 도대회 등 굵직한 대회에서 16번의 우승과 22번 준우승을 거뒀으며 집 거실에는 입상 트로피와 상패·메달 등 70여 개가 가득히 진열돼 있다.
하지만 김 할아버지는 6년 전 심장마비를 일으켜 심장수술을 받은 후부터 조금 덜 격렬한 정구로 종목을 갈아탔다.
"공 치는 파워는 조금 떨어지지만 공이 어디로 와도 백핸드·포핸드 자유자재로 받아 칠 수 있어요. 나이 들면 힘으로 공을 치기보다는 요령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루 세 끼를 꼭 먹는다는 김 할아버지는 손수 운전을 해서 경기장으로 나온다. 교회에 나가시는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최고라 생각하고 정구장 나가시는 것을 반긴다고 했다.
"노인들이 정구를 하다 보면 발목이나 무릎 부상을 입기 쉬워요. 경기 전에 반드시 준비운동을 하세요. 경기 도중에는 너무 욕심을 내지 마시고요."
범어정구장을 이용하는 회원들은 3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하지만 회원들 대다수는 격식 없고 너그러운 성격의 김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회원들은 김 할아버지가 때때로 경기장 음료수 제공은 물론 대회가 있는 날이면 금전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요즘 무릎관절이 아파오는 게 걱정"이라는 김 할아버지는 정구 라켓을 들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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