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도 조세개혁위해 국민투표 친서민정책, 먼저 소통이 돼야"
'전분육등·연분구등법'(田分六等 年分九等法). 토질에 따라 여섯 등급으로 나누고 풍흉에 따라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세금을 매기는 조선시대의 핵심 조세제도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세종이 국민투표까지 실시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세종의 소통정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이다.
당시에는 관원이 직접 현장에 나가 농산물 작황을 조사한 결과를 기초로 세율을 결정하는 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이 백성들을 오랜 기간 힘들고 화나게 하고 있었다. 작황을 임의로 정하는 과정에서 각종 담합과 비리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일종의 정액세제인 공법(貢法)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1427년(세종 9년) 이를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하기도 했다.
세종은 1430년(세종 12년), 공법에 대한 본격 논의를 시작하면서 찬반 의사를 백성들에게 직접 물었다. 그 결과 17만2천806명이 투표에 참여해 57%가 찬성하였지만 세종은 3분의 2가 찬성하지 않았다면서 시행을 미룬 채 더 논의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찬성이 많았던 하삼도(下三道:영남·호남·충청)에서 각 2현씩 6현에서 시범 실시하도록 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1444년(세종 26년), 드디어 전분육등 연분구등이라는 공법을 도입하였다. 논의 시작 14년 만이다. 그러나 세종은 여기서 또 한 번 신중을 기했다. 곧바로 전국에 실시하지 않고 1450년 전라도에만 전면적으로 실시한 것이다. 나머지 지역의 경우 세조 때 경기·충청·경상에, 그리고 성종 때 황해·강원·평안·함경에 실시됨으로써 검토 시작 60년 만에 전국 실시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오랜 기간 원칙을 갖고 일관성 있게 국민과 소통하면서 만들어 낸 이 제도는 국민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요사이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친 서민정책' 봇물이 터졌다. 그런데 이 서민 정책이야말로 세종의 원칙과 소통의 정치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첫째, 세종이 담험손실법하에서 나타난 각종 비리를 찾아내서 엄단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대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서 백성의 애로사항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진정성이 필요하다. 처벌로 국민들 속은 잠시 후련할지 몰라도 그보다는 근본적인 처방으로 법과 제도를 손질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둘째, 서민이 지금 왜 힘들어 하는지 정확한 원익분석을 실시하고 이를 기초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분배구조가 악화되고 또 빈곤율이 높아지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찾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빈곤율이 높아진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노인과 여성가구주의 빈곤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또 그 원인은 이들 계층들이 일자리 찾기가 더욱 어려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제대로 진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처방은 계속 다른 처방을 시도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약물과다로 인한 내성증가로 치료효과를 급격히 떨어뜨린다. 외환 위기 이후 무수히 많은 친서민 정책이 시행됐다. 그런데 이 정책의 효과를 검증하기도 전에 또 다른 정책을 만들려고 한다면 앞으로 '백약이 무효'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셋째, 정책의 효과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친서민 정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크게 조세정책, 복지정책, 고용정책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정책을 만들기 전에 이들 정책의 한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 소득세 납세자 중 반이 세금을 내지 않는 현실에서 조세정책을 통해 서민을 보호하기란 애당초 힘들다. 또,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소외계층이 30%가 넘는 상황에서, 그리고 전달체계에 여전히 문제가 많은 상태에서 기존 복지를 확대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진정한 친서민 정책이 아니다. 또 아무리 사회적 일자리 확충과 같은 고용 정책을 만들어 내더라도 우리의 노동시장 여건을 감안할 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정도는 지난 10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당장 인기가 없거나 지지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지금의 친서민 정책 바람은 일단 진정시켜야 한다. 대신 기존의 서민정책을 점검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단 하나의 확실한 친서민 정책방안을 만들더라도 원칙을 갖고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단기간에 뚝딱 만들어진 친서민 정책은 나중에 '낮은 실효성과 큰 실망'으로 귀결됨으로써 결국 신뢰 상실과 더 큰 지지율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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