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쪽방 거주자 850명 "선풍기라도 있으면 다행"
5일 오전 10시 대구 동구 신암동. '월세방 있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따라 골목으로 10여m가량 들어가자 오래된 여인숙이 눈에 들어왔다. 2층인지 3층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건물이었다. 계단으로 올라서자 어두컴컴한 복도가 나타났다. 10m 길이의 복도 양 옆으로 작은 문 12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실례합니다"하고 말을 던지자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면도를 하지 않은 수염 가득한 얼굴에는 더위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쪽방촌 사람들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올여름을 보내기엔 유난히 덥고 길다. 무더위가 두렵기까지 하다. 시원하게 쉴 곳을 찾아갈 기력도 없는 이들은 하루하루가 서럽다.
6년 전 쪽방촌으로 들어온 양모(54) 씨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반바지 차림이었다. 양 씨는 "할 얘기가 뭐 있겠어, 여기 사는 사람들 사정이야 다 똑같지 뭐"라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칙칙한 냄새와 후텁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6.6㎡(2평)가 조금 넘는 방은 옷가지와 TV, 냉장고 등에 자리를 내주고 세 사람이 겨우 앉을 정도의 공간만 남았다. 도로쪽으로 난 조그마한 창을 통해 바깥열기가 그대로 방에 전달됐다.
양 씨는 "말할 수 없이 덥지. 더워도 할 수 없지 않나. 선풍기라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하며 한숨을 쉬었다.
쪽방촌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양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매달 정부에서 받는 30만원 중 방세를 내고 나면 한 달 먹고살기가 빠듯하다. 몸이 성한 사람은 일이라도 하지만 대부분 지병이 있어 병원을 왔다갔다하는 신세다. 양 씨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접을 수 없어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았지다. 행정기관의 지원금은 한 달에 3만원.
양 씨는 "양팔이 아파서 일도 못나간다. 에어컨이라도 있는 곳에 들어가 쉬고 싶어도 기운이 없으니 어디 갈 수 있어야지"하며 체념한 듯 말했다.
양 씨는 찬물에 샤워를 하면서 무더위를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공동샤워장에 가서 시원한 물로 씻어도 방에 들어서면 금세 온몸에 땀이 난다. "지난해는 열대야가 별로 없어서 버틸 만했는데 올해는 어찌된 게 낮이든 밤이든 똑같이 덥냐"며 "한번 시원하게 비가 오고 나면 더위가 꺾이려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대구지역 쪽방 거주자는 지난해 말 850명을 넘었다.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는 겨울철과 달리 여름철은 찌는 더위 외에는 쪽방촌을 찾는 이들이 없다. 양 씨보다 더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무더위 속에 행여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두려운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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