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의 일이다. 풀 죽은 남편을 몰아세우며 흥분한 부인이 외래를 찾아왔다. "어떻게 팍 죽여 줄 수는 없는가요?" 하는 주문이다. 무슨 소린가? 대부분은 기를 살려 달라고 애를 쓰는데…. 남편은 40대 초반의 건강한 직장인이다. 남자는 성욕이 너무 강해서 마음과 육체를 조절하기가 곤란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단다. 부인은 바깥에서 하는 행실은 모르고도 지낼 수 있지만 온갖 성병을 다 묻혀서 오니 그게 미칠 노릇이란다.
성욕을 줄여주는 약이 있는가? 사실 이런 남자에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피임약인 여성호르몬을 복용시키면 일시적으로 성욕이 줄어든다. 그러나 실제 처방되지 않고 있다. 뒷감당을 예측할 수 없고 임상 보고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또 비아그라를 처방해 달라는 남자는 많아도 성욕이나 발기력을 줄여 달라는 남자는 없다.
비뇨기과에서는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요도 파열이 생긴 환자에게 요도문합술을 시행한다. 수술 후 적어도 1, 2주 동안은 새벽 발기를 방지하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투여하는데, 음경 발기로 인한 통증이나 봉합 부위 파열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전립선암 환자에게 호르몬 치료를 할 때 사용되는 항남성 호르몬 제제들이 있다. 이 약들은 남성호르몬을 차단하여 마치 고환 거세를 한 효과가 나타나서 암 세포를 줄여줄 뿐 아니라 성욕이 없어지고 발기력도 현저히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긴다.
최근 죄질이 아주 나쁜 성범죄가 급증하면서 지난 6월 '성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법' 소위 '화학적 거세법'이 국회를 통과해 1년 후인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사용될 약이 바로 항남성 호르몬 제제다. 아동 성폭력이나 기타 성범죄 행위가 점점 잔혹해지면서 국민들은 경악하기에 이르렀고, 뭔가 지금의 형벌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국민정서가 이런 법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법은 통과되었지만 시행 관리에는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약값이 만만찮고, 신체에 가하는 시술인데 임상 자료가 부족하고 준비되지 않은 듯하다. 막연히 몇몇 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을 보고 따라해 본다는 식의 도입은 범죄자 관리나 재발 예방 효과에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정신질환에 가까운 재발성 성범죄는 단순히 약물주사 한 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동이나 딸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점점 흉폭해지는 성범죄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성폭력 특별법만 제정할 것이 아니라 왜곡된 성의식을 바로잡는 범국가적 차원의 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박철희(계명대 동산의료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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