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민의 비참한 삶 도외시 우리사회 이념적 혼란 큰일
1948년 6월 24일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자 미국은 곧바로 B-29 폭격기 약 60대를 영국으로 날려보냈다. 여기에 원자폭탄이 실려있으니 허튼짓 말라는 암시였다.(그때까지 소련은 원자폭탄이 없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꿈쩍도 않았다. 프라우다지(紙)를 통해 "신경이 약한 사람은 원자폭탄에 겁먹지"라고 조롱까지 했다. 영국에 배치된 B-29에는 원자폭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미국이 중국에 원자폭탄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면 한국전쟁에 참전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마음을 바꾼 것은 스탈린이 준 정보였다. 그것은 미국이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우려해 한국전쟁을 제한적으로 치를 것이며 원자폭탄 사용 계획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스탈린이 배짱을 부리고 마오가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KGB가 영미 정보기관에 심어놓은 스파이 덕분이었다. 그 스파이는 훗날 '5인의 고리'(Rings of Five)라고 불린, 케임브리지대 출신 5명의 젊은이-킴 필비, 앤서니 블런트,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매클린, 존 케른크로스-였다. 이들은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은 혜택받은 자들이었지만 대공황으로 자본주의가 끝장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서구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희망은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소련에 있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자명했다. 그것은 새로운 조국 소련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끈끈한 우정과 동성애-필비를 제외한 4명은 모두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였으며 블런트와 버지스는 연인 관계였다-로 맺어진 이들은 '빵빵한' 가문과 케임브리지 출신이라는 간판을 이용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영미 정보기관에 침투해 엄청난 정보들을 소련에 넘겼다.
영국과 미국의 추적으로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5인조 중 매클린과 버지스, 필비는 소련으로 탈출했다.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소련의 현실은 이상향이 아니었다. 실망한 매클린은 삶을 낭비했다고 자책하며 술에 빠져 살다 죽었다. 이에 앞서 구제불능의 알코올 중독자였던 버지스도 하는 일 없이 빈둥대다 곧바로 사망했다. 필비는 소련연방영웅 칭호를 받고 사후 기념 우표까지 발행되는 등 겉으로는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역시 자기분열에 시달렸다. 1972년 필비를 만났던 전 KGB 의장 올레그 칼루긴은 그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허물어져 있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풀풀 났으며 형편없는 러시아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댔다."
얼마 전 유명환 외교부장관이 "북한이 좋으면 북한 가서 살아라"고 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야당은 "반민주적 폭언"이라며 해임을 요구했고 사이버 공간에서도 비난이 빗발쳤다.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젊은 층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에서 유 장관의 발언이 적절치 않은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좋아서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천안함 사태로 맨살을 드러낸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향의 혼란을 고려한다면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 명을 굶겨 죽이고 중국의 비호 속에 핵개발과 마약'무기 밀거래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 김정일 체제다.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정상 국가가 아닌 것이다. 이런 체제가 지향해야 할 목적지라면 대한민국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북한에서 사는 것이 옳다. 밥 대신 이념만으로도 배가 부르다면 말이다.(그러나 3대 권력 세습을 진행 중인 북한에 이념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그래서 권하고 싶다. 딱 1년만 아니 한 달만 북한에서 인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라.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소련의 실체를 체험한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아님이 증명되어도 사실을 왜곡해 우리가 옳다는 주장을 한다. 지적으론 이런 과정을 무한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행동은 가짜 확신이 확고한 현실과 충돌할 때에만 견제될 수 있는데 보통은 전장(戰場)에서 그렇게 된다." 우리에게 그 전장은 북한 인민의 비참한 삶의 현장이다.
鄭敬勳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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