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마다 학부모 원하는 명문고 육성, 지역도 함께 살려갈 터"

입력 2010-08-03 08:47:00

이영우 경북도교육감에게 듣는다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지난달 26일 만난 이영우(65) 경북도교육감은 법정 스님이 쓴 수필집 '무소유'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미 여러 번 읽었지만 책을 펼 때마다 느낌이 새롭고, 초심(初心)을 다잡게 해 주는 좋은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임을 맞아 기본에 더욱 충실한 교육행정을 펴나가겠다"고 했다.

경북도 교육청이 민선 2기를 맞았다. 2009년 4월 초대 직선 교육감으로 선출됐던 이영우 교육감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재선출됐다. 이 교육감은 "1년 만에 선거를 두 번 치렀다. 선거가 주민들에게 교육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며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학교 죽으면, 지역도 죽는다

이 교육감은 취임 직후부터 많게는 하루에 두 곳씩, 총 23개 시·군 교육청을 순회했다. 한두 곳만 다녀도 하룻길이었다. 경북 구석구석을 돌면서 학교가 죽으면 그 지역도 죽는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농촌 주민들이 대도시로 몰리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자녀 학업 문제 때문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 빠져나가니까 학교가 텅 비고, 학교가 비니까 그 지역이 쇠퇴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북도 교육청은 타 시·도 교육청이 열을 올리는 학력 높이기보다 더 근원적인 숙제를 안고 있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경북지역 초·중·고교 규모는 974개교(유치원 제외), 36만5천 명으로, 2000년 965개교, 44만 명에 비해 크게 줄었다. 개발 수요에 따른 주민 이동으로 일부 지역에선 학교 수가 소폭 늘었지만, 전체 학생 수는 2000년 대비 7만5천 명(17%)이 줄어드는 기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더 심각하다. 도교육청의 학교 통폐합 기준에 해당하는 올해 학생 수 50명 이하 학교는 298개교(31%)나 된다. 10개 중 3개 학교가 통폐합 대상이다.

이 교육감은 "소규모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이뿐만 아니라 방과후 학교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곤란하고, 학생들은 친구관계의 폭이 좁아 사회성 발달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통폐합의 타당성을 피력했다. 도교육청이 2007~2009년 통폐합된 학교의 학부모·학생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각각 69%, 67%의 만족도를 나타낸 점도 향후 통폐합 추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교육감은 "현장을 다녀 보니 '우리 지역에도 우수학교를 설립해 달라'는 요구가 가장 많았다"면서 "1개 시·군당 1개 우수고교를 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실제 경북의 경우 봉화의 4개 남녀 중·고교가 봉화중·고교로 통합됐고 영해, 구룡포, 고령, 의성, 울진 등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교육감은 "경북에서도 얼마든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명문고교를 만들 수 있다"며 울진고 사례를 들었다. 1999년 울진종고과 울진여고가 통합한 울진고는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부터 수능성적 향상 우수고교로 선정됐다. "한때 자녀를 포항으로 유학 보내던 울진 주민들이 이제는 울진고에 입학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학생들이 몰리자 인근 죽변종고까지 죽변고교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오고 있습니다. 학교가 지역을 살린 좋은 예지요."

학교를 살리는 일은 비단 교육청만의 몫은 아니다. 내년부터 전국 단위 모집(20%)이 확정된 김천고(자율형 사립고교)의 경우, 혁신도시에 걸맞은 지역 명문학교로 육성하기 위해 장학금 100억원 모금에 나섰다. "예전의 자치단체장들은 길 닦고 다리 세우는 게 치적이었지만, 요즘엔 좋은 학교를 가꿔나가는 게 미래를 위해 더 중요한 일 아닙니까."

◆학력은 높이고, 사교육은 낮추고

"어느 지역에 갔더니 한 어르신이 손자 3명 학원 보내는데 월 100만원이 넘게 든다면서 학교에서 잘 가르치는 것은 둘째치고 제발 대책을 좀 세워달라고 하소연하대요. 참,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경북 교육이 직면한 또 다른 과제는 사교육 부담을 줄이면서 도시·농촌학교 간 학력 격차를 좁히는 일이다. 이는 돌아오는 농산어촌 학교를 육성하겠다는 큰 줄기의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 교육감은 "학력 책임제를 도입해 교실 수업을 개선하고, 부진아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며 "예를 들어 김천고는 교사들이 개인지도 중심의 영어, 수학반을 운영하면서 사설학원의 3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학력을 책임지고 있다. 대도시에서 우수 논술 강사를 초빙해서라도 학생들의 관심을 학교로 모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외에도 사교육 대체 서비스로 ▷사이버 가정학습 전학생 무료 수강 ▷e경북교육센터 운영 ▷IPTV 전 학교 배치 ▷맞춤형 방과후학교 스타 강사 활용 등을 중점 시행하겠다는 것.

영어 원어민 교사도 더 배치하겠다고 했다. 도교육청의 경우 현재 원어민 교사 645명을 전체 965개교 중 846개교(87.7%)에 배치하고 있으며, 원어민 교사 배치가 어려운 농산어촌 147개교에는 원어민 활용 원격 화상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2011년에는 300억원의 예산을 투입, 900개교에 원어민 교사를 배치하고, 2014년까지 전 학교에 배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방과후 학교 운영 개선도 과제다. 경북 소규모 농산어촌 학교는 원거리 교통 불편 등으로 인해 질 높은 강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대책으로 방과후 학교 강사 채용 박람회를 통해 우수 강사를 확보하고, 인근 학교와 연계하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확충하겠다고 했다. 이 교육감은 "다음 주부터 학교 야간 자율학습 현장을 돌아볼 계획"이라며 "학생들의 등이라도 한 번 두드려주고 싶다"고 했다.

◆학교 평가는 점진적으로, 학생복지는 혁신적으로

이 교육감은 보수성향이지만, 열린 보수를 지향하겠다고 했다. "얼마 전 전국 시·도교육감 회의에 참석해 보니 진보·보수성향의 교육감이 섞여 활발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 진영이 대립하기보다 서로 지혜를 나눴으면 해요." 교원평가 등에 대해서도 "평가 결과를 보수나 인사에 반영하는 갑작스런 변화는 안 된다. 일단 제도 정착 후에 검토해 볼 것"이라고 했다.

최근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안전한 학교 만들기나 무상급식 확대 사업 등에 대한 대안도 내놨다. 현재 65%가량인 CCTV 보급률을 하반기 추경을 통해 100%로 확대하고, 배움터 지킴이도 현재 160명에서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학생 수 100명 이하 소규모 학교나 특수교육 대상자, 저소득층 자녀 등은 무상급식할 것"이라며 "농어촌 소규모 학교에는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승진 가산점 부여를 통한 우수교사 배치 등 제도적 뒷받침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도교육청은 이런 사업 내용을 담은 '경북교육발전 4개년 계획'(2011~2014)을 수립한 데 이어 기획단을 구성, 우수한 교육 시책 개발에 나선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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