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칼럼-지방도 잘 살 수 있다(17)] 제5공화국의 경제대통령 김재익

입력 2010-08-03 07:55:52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제3공화국이 막을 내리고, 잠시 최규하 대통령의 제4공화국이 있었지만, 곧 이어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이 열렸다. '12'12'라는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비명에 세상을 떠난 박 대통령의 유업인 조국 근대화, 즉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하는 과업을 안고 출범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이라고 불리는 당시의 정국은 권력의 향배를 놓고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대통령 1인 체제로 운영되었던 나라가 선장인 대통령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니, 모든 것이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물가는 치솟고, 공무원은 눈치만 살피고, 공장가동은 중단되는 등 박 대통령 18년의 제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이 고개를 내밀었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여름에는 냉해까지 극심해 쌀 수확이 전년대비 36%나 줄어들어 국민들은 식량걱정까지 해야만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60년대 이래 10% 수준을 유지하던 경제성장률이 1980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1.9%)를 기록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국내 자본축적이 없었기 때문에 차관(借款)형식의 외국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자본가들은 장래가 불투명한 한국경제를 보면서 한국정부가 보증한 각종 차관상환연기를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한국정부는 부도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18년간의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구하기 위하여 스탠포드대학 출신의 경제학자 김재익을 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하였다. 김재익 수석은 한국경제의 고질병이었던 인플레(연간 10~20%)를 근절하는 수술부터 시작하였다. '연간 물가상승 3%'라는 획기적인 목표를 세워놓고, 재정지출 동결'공무원 봉급 동결'추곡 수매가 동결, 심지어는 기업의 임금인상 자제' 이익배당 억제 그리고 물가안정을 위한 대국민 경제교육실시 등 가히 혁명적인 정책들을 내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과보호된 재벌기업 독과점 품목의 과감한 수입 개방을 통하여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시켰고, 쌀을 제외한 농산물(밀, 콩, 옥수수 등)의 수입도 확대하여 국내 식품가격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정부주도 경제'를 '민간주도 경제'로 돌려놓기 위하여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혁명적인 개혁이 공직사회에서 단행되었다.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던 재무부를 무장해제하고, 실질적인 기업회장 노릇을 하던 상공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

김재익의 경제개혁은 지방정책에서도 이어졌다. 울산'창원 등 국가산업단지에 입지한 대기업 공장들의 정상가동을 위하여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을 벌여, 재벌들의 방만한 문어발식 경영에 메스를 가하였다. 대기업과 지방 중소기업의 연계를 강화시켜주기 위해서는 부산의 사상공단과 대구의 성서공단을 재정비하고, 중소도시와 농어촌 곳곳에 농공단지를 조성하였으며, 중소기업진흥공단을 만들어 중소기업에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도록 했다.

산업화가 가져온 최대의 부작용인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강력한 수단인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제정하였다. 생활권 중심의 지방도시 육성에 역점을 둔 '제2차 국토개발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특별대책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구하고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한판 승부를 벌인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차관상환을 요구하기 위해 찾아오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외국은행장들에게 김재익 수석은 한국경제의 개혁상황을 브리핑해주고, 차관상환연기를 요청하였다. 그들은 김수석의 경제개혁에는 동의하고 있었지만, 김재익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일개 비서관에 불과하며 대통령의 결심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관연장을 주저하였다.

바로 이때 전두환 대통령은 외국 자본가들과 김재익 수석을 대통령집무실로 불렀다. "경제는 이 사람이 대통령이야!"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한마디에 외국 자본가들은 한국경제의 장래를 확신하고, 차관 상환연장에 서명하였다. '경제대통령'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낸 전두환 대통령의 믿고 맡기는 폭넓은 인사정책이 한국경제를 살려낸 것이다.

김재익 수석은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에 의해 학(鶴)같이 살아온 삶을 접고 안타깝게도 4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삼가 고인의 영전에 다시금 조의를 바친다.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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