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땐 무척 커 보이던 아버지의 등이 이제는…
♥자식 위한 때아닌 '겨울 등목'
나의 고향은 의성 비안이다. 겨울에는 한없이 춥고, 여름에는 대구 못지않게 더운 곳이다. 아우는 1964년 경북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으나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안암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어머니의 도움으로 자취를 하였다.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2학년을 마치고 1년을 휴학하기도 하였다.
그 후 수년이 지났다. 나는 어느 해 겨울 고향에 갔다. 동생이 공부를 하고 있을 때다. 1970년 겨울과 71년 초 사법시험을 칠 때까지 어머니는 100일 기도에 들어가 영하 10~15℃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도 아들의 목표가 이뤄지도록 새벽, 샘터에 나가시어 10~15㎝의 두꺼운 얼음을 깨고 차디찬 물로 아버지와 함께 등목으로 목욕재계를 하셨다.
'등목'하면 흔히들 여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식을 위함에는 어버이의 등목은 때를 가리지 않으셨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1971년 아우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우리 집은 물론 문중에 경사가 났다. 아우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군법무관을 비롯하여 대구지·고법판사, 상주, 서울, 부산 근무를 거쳐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3년간의 법관생활을 청산하고 명예퇴직을 하였다. 지금은 서울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자식을 위한 어버이의 거룩한 희생을 교훈 삼으며 즐겁게 살고 있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 "딸이 해주면 더 시원하다"
등목이라 하면 우리 친정 아버지의 등목이 제일 많이 떠오른다. 우리 남매는 2남 4녀다. 남동생은 쌍둥이다. 우리 집은 텃밭이 있어서 여름이면 콩밭 메고, 감자 캐고, 여러 채소들을 수확했었다. 방학이면 우리는 아버지의 텃밭 일을 도왔다. 오전 내내 같이 일손을 거든 뒤 점심을 먹기 위해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아버지의 등목을 해드려야 했다. 집안에 우물이 있었는데 시원하게 물을 길러 아버지의 등목을 시켜 드리면 시원하다면서 흐뭇해하시곤 하셨다. 어렸을 때는 남매들끼리 우물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한꺼번에 아버지의 등목을 해 드렸다. 그때는 아버지의 등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방학이면 어김없이 일을 도왔고, 우리가 크자 아버지의 등은 점점 작아졌다.
지금은 시집을 가서 등목을 해 드리기가 힘들지만 더욱 왜소해져만 가는 아버지의 등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등목을 해드렸던 여름이 많이 생각난다.
김은영(대구 북구 서변동)
♥ 지금 아들은 "혼자 샤워할게"
요즘같이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저절로 난다. 초등학생들의 하굣길에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초등학교 때 난 십오 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통학했다. 그 시절은 다들 그랬지만 우리 집이 워낙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특히 더운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먼 길을 걸어온 나를 어머니께서는 뒤안의 우물가로 데리고 가 등목을 해 주셨다. 땀이 식기 전에 해야 한다면서 다짜고짜로 웃통을 벗고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두레박으로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를 퍼 올려서는 그대로 등에다 부어주셨다. "앗, 차거! 엄마 너무 차갑잖아."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게 하면 언제 땀이 났었던가 싶게 오히려 몸에 한기가 몰려왔다. 등목을 한 후에는 그 시원한 우물물에다 설탕을 듬뿍 넣은 미숫가루를 한 그릇 타서 마시게 해주셨다. 몸을 씻은 후에 마시는 것이라 그 미숫가루는 몸속으로 찬 냉기를 그대로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여름이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가 꼭 해 주셨던 등목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큰아이 초등학교 때는 나도 그 옛날 생각이 나서 아이에게 몇 번 시도를 했었다. 아이는 창피하다면서도 좋은지 등목해 주는 걸 싫다고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작은아이도 똑같이 시도를 해보려 했더니 나를 무슨 괴물 보듯이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혼자 샤워를 하면 되지 뭘 해 주느냐는 것이다. 창피하다고 한다.
두 아이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게 그때부터 나타났었다. 지금 우리 두 아이들이 내가 어릴 적 엄마로부터 받았던 등목과 같은 맛을 알기나 할까? 세월이 좋아지다 보니 정이 묻어나는 옛날 정서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없다. 등목보다는 샤워가, 선풍기보다는 에어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는 때문인 듯하다. 오늘 유난히도 어머니가 그 우악스럽던 손으로 해 주시던 등목을 받고 싶어진다.
전병태(대구 달서구 두류2동)
♥ 바지 안 버리려 엉덩이 치켜들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해마다 8월 15일날 동문 체육대회를 한다. 1년에 한 번 모교에서 열리는 동문체육대회에 언니 오빠 친구 선후배들을 만나러 전국에서 모인다. 운동경기하기 전 운동장에 모여 기관단체장님들 인사말을 듣다 보면 등에서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모자 수건을 써도 햇볕이 강렬해 쇠도 녹일 것만 같다.
나무 그늘 밑에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에 천막 하나에 의지하고 각종 운동경기를 하면 땀이 비 오듯 하고 천막 안도 후끈거려 머리에서 불이 날 지경이다. 더워도 그렇게 더운 날은 없는 것 같았다 한번 참가했다가 더워서 혼이 나고 다시는 안 간다고 다짐을 했다가도 8월 15일만 되면 휴가 겸 형제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그리운 선생님도 만난다고 해마다 가게 된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운동경기에 참여해서 열심히 뛰고 선물도 받았는데 한번 운동장에 나가서 곤욕을 치르고 나면 서로 운동경기에 네가 나가라고 미루게 된다.
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청해서 배구 족구 달리기를 하고 땀을 비 오듯 흘린 다음 수돗가에 가서 웃통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묶은 다음 엎드려 등목을 한다. 한 사람이 지하수 물로 등목을 해주다 장난기가 발동해 머리에서 허리 부분으로 내려가면 바지 안 버리려고 점점 더 엉덩이를 치켜든다. 이게 재미나서 또 목 부분으로 물을 옮겨 가면 고개를 치켜들고 '땟국물'이 등목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등목 받는 사람이 일어서지도 못한 채 헉헉헉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면 항복이라도 받으려는 듯 등목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며 구경하는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남자들은 더워도 등목하고 나면 시원할 텐데…. 여자들은 함부로 등목을 할 수도 없지만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붙이고 팔다리만 지하수 물에 씻어도 시원했다. 그럴 때면 마음대로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등목 하니 땀 뻘뻘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고 지하수 물에 등목하는 동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함종순(김천시 개령면)
♥마당 구석엔 '천연 암반수' 솟고
유년시절 우리 집은 넓은 마당 모퉁이에 퐁퐁 샘솟는 1m 깊이의 우물이 하나 있었고 우물 옆으로 오솔길이 하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네랄이 풍부한 천연 암반수 같은 샘물이었다. 엄마는 친인척이 와도 땀띠가 사라질 정도로 차가운 물이라면서 등목을 권한다. 우물 옆에는 목 말라 하는 누군가를 위해 표주박으로 만든 엄마표 바가지를 몇 개 비치해 두었다.
후텁지근한 날 하교하고 돌아오면 책가방을 평상에 내려두기 바쁘게 물 한 바가지로 목을 축였고 동네 친구들과 등목으로 더위를 식히곤 했다. 물이 등짝에 쏟아질 때면 시원함보다 오싹 소름 돋게 하는 차가움에 자지러지면서도 퍼붓는 순간 짜릿함을 만끽하려고 깔깔거리며 한바탕 놀다 보면 어디선가 "저녁 먹어"라는 목소리에 헤어지곤 했다.
여름밤이면 우리 식구들의 피곤을 씻어줄 샤워장으로 난리법석이었고 매번 엄마는 가마솥에 옥수수 아니면 감자를 삶아 간식으로 주셨다. 한구석에 모기를 쫓기 위해 장작불을 지피고 그 위에 갓 베어온 싱싱한 잡풀을 얹어 연기를 피워 모기향을 만드셨다. 멍석 깔린 마당에는 갓 삶아낸 옥수수가 한 소쿠리 놓여 있었고 난 동네 친구들을 불러 옥수수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잠이 들곤 했다. 소꿉 친구들아! 오늘도 33도라 하더라. 우리 등목하러 가자.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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