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재비어(1506~1552)는 스페인 나바레 왕국 귀족가문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 가세가 기울자 학문적 성취를 위해 파리대학으로 유학가서 동료학생 로욜라 이그나티우스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이 둘 외 3명이 더 합세해 1534년 몽마르뜨의 작은 성당에 모여 청빈, 자선, 복종, 무슬림 개종을 맹세하고 해외선교활동을 다짐하는 단체를 결성하니, 이 모임이 예수회(Jesuit) 탄생의 모태가 됐다.
재비어는 주로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펼쳤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인도네시아 인근 말라카와 암본 섬에서 포르투갈 식민지 정착민(선원)의 영성회복에 주력하던 그는 가고시마 출신의 일본인 안지로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평소 동방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재비어는 안지로의 안내로 1549년 오늘 일본 규수에 첫 가톨릭 선교활동을 위해 도착했다. 신분은 포르투갈 왕의 특사자격이었다.
일본서 재비어는 언어장벽으로 선교에 큰 장애를 겪었고 1551년 야마구치의 한 다이묘에 의해 처음 설교를 허락받지만 교리문답서를 크게 읽는데 그쳤다. 2년간의 체류 끝에 그에게 내려진 조치는 결국 추방이었지만 그가 남긴 가톨릭의 여운은 이후 지하로 스며들었다. 중국 본토 선교를 준비하던 중 열병으로 1552년 사망했다.
우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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