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휴가지, 대구시장·경북지사는 무슨 책 읽을까

입력 2010-07-24 08:00:00

지역 명사 6인의 북캉스 엿보기

몸은 비우고 머리는 채우는 북캉스가 여름 휴가철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북캉스는 책(book)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로 책과 함께하는 피서를 말한다. 북캉스족들에게 휴가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고 싶었던 책을 읽고 재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남들보다 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지역 명사들도 마찬가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써도 모자라는 그들에게 여름 휴가는 더욱 값진 시간으로 다가온다. 올 여름 지역 명사들(대구시장, 경북도지사, 대구시교육감, 경북도교육감, 대구대총장, 대구지법원장)이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북캉스 계획을 들어봤다. 아울러 가족 또는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도 추천받았다.

◆읽고 싶은 책

인문, 경제·경영,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목록에 오른 가운데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홍덕률 대구대총장이 같은 책을 선정해 눈길을 끌었다. 김 지사와 홍 총장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책은 인문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김영사)다. 단순한 개념 설명 대신 다양한 예시를 통해 독자 스스로 정의의 의미를 찾도록 한 구성이 눈에 띄는 화제의 책이다. 김 지사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짚어볼 때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새롭게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등 우리가 해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에도 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홍 총장은 "평소에는 대학 경영에 직·간접으로 도움이 되거나 참고가 될 만한 책을 주로 읽지만 휴가 기간에는 생각의 폭을 넓히거나 삶과 사회의 본질적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책을 읽을 계획이다.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석학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 내용을 엮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롭다는 것이 무엇이며 정의로운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줄 책으로 손색이 없다. 출세와 성공만을 좇는 천박한 사회에서 한번쯤 삶의 본질과 사람됨의 근본을 생각하고, 나아가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상을 고민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질서를 세워가야 하는지에 대해 값진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경쟁력 있는 도시 건설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는 김범일 대구시장은 '마켓 3.0'(필립 코틀러 지음·타임비즈)을 골랐다. '마켓 3.0'은 상품으로 승부하던 시장(1.0)과 고객만족으로 승부하던 시장(2.0)을 넘어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는 시장을 지칭하는 용어. 김 시장은 "미래를 예측하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통찰할 수 있는 가이드 같은 책이다. 마켓 3.0을 선도하는 기업은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이는 기업이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일류 도시, 일류 행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다"고 설명했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일반인들이 쉽게 소화하기 힘든 '통섭: 지식의 대통합'(에드워드 윌슨 지음·사이언스 북스)을 선정했다. '통섭'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지식의 통합을 지칭하는 말. 우 교육감은 "최근 교육방법론으로 총체적 접근이 널리 적용되고 있다. 총체적 접근의 기본 관점은 여러 가치들을 통합해 하나의 큰 인식 체계를 세우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지식의 통합으로 압축 표현되는 통섭은 성리학과 불교에서 이미 사용되어 온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유·초·중등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와 학교교육의 조화는 물론 대학교육 및 평생교육, 특수교육과 성인교육 등 교육 전 영역의 총체적 발전이 연계되어야 하는 만큼 내게 꼭 필요한 정보와 지혜를 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영우 경북도교육감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은 법정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선택했다. 이 교육감은 "이미 두번 정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법정스님이 남기신 행간의 의미가 워낙 오묘하고 깊어 한두번 읽어서는 그 심오한 의미를 깨우칠 수 없다. 무소유는 청렴·결백해야 하는 공직자에게도 좋은 교훈을 주는 책이어서 다시 한번 읽고 싶다"고 말했다.

◆권하고 싶은 책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각각 '수업'(김용택·도종환 외 지음·황소북스)과 '죽음의 수용소에서'(원제:인간의 의미 탐구·빅터 프랭클 지음)를 추천했다. '수업'은 한국 문학계를 이끌어 가는 시인과 소설가들이 수업을 테마로 흑백 사진 24점과 함께 엮어낸 포토에세이집. 김 시장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책선정위원회가 7월의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할 만큼 청소년들의 건전한 인격 형성과 지적 성장에 유익한 책이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특별한 수업과 수업에 얽힌 추억을 풀어 놓고 있어 온 가족이 함께 읽어도 좋은 책이다"고 말했다.

김관용 지사가 고른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저자의 자전적 실화를 담고 있다. 김 지사는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도 치열하게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저자의 모습은 그 자체가 인간 존엄성의 승리다. 오래 전 아내가 선물한 책으로 지금까지 13번 정도 읽었다.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 펼쳐보는 내 인생의 반려자 같은 책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힘겨운 문제들도 삶의 근본적인 질문(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비춰보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원들에게도 일독을 권했고, 한번쯤 읽어 보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걸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대구시 교육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우 교육감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청소년들에게 권했다. 자퇴와 정신병원 입원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정체성을 확립해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데미안은 올바른 자아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꼭 한번 읽어 봐야 할 책이라는 것이 추천 이유다.

홍덕률 대구대총장은 법정스님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선택했다. 홍 총장은 머리가 혼란스럽거나 거칠고 각박한 삶에 지칠 때 꺼내 다시 읽는 책 가운데 법정스님 책이 여러 권이다. 홍 총장은 "요즘 우리 세상은 이기심과 탐욕, 무한경쟁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로 인한 분열과 갈등, 정신적 피로 등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럴 때 잠시나마 인간 존재의 본질에 천착해 들어가는 것, 욕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신적 휴식에 이르는 길이라 생각된다. 법정스님의 잠언집은 가족 휴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수학 대구지법원장은 청소년들에게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지음·보림출판사)를 추천했다. 이덕무는 귀한 책만 만나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책 표지만 봐도 웃음을 지었던 책벌레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서얼이라는 신분의 굴레에 발목이 잡혀 있었지만 굳건한 의지와 지식을 향한 열정으로 역경을 헤처나간 의지의 인물이었다.

김수학 원장은 "법정스님은 무소유에서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어지는 그런 책을 읽을 것이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고 그 구절들을 통해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온갖 정보와 출판물이 범람하는 오늘날 흙 속의 진주를 캐내듯 양서를 골라 그 속의 문장을 일일이 음미해가며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화려한 수식어와 세밀한 묘사 그리고 유려한 문체에서 독자들은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책이란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긴 여운을 남기고 준엄한 교훈을 줘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책만 보는 바보'는 참 좋은 책이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