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건설부문 강수돈(47) 마케팅전략팀 상무는 '건설맨'이라 부르기에는 2% 부족하다. 1989년 첫 직장으로 옛 삼성건설에 입사한 뒤 20년이 넘게 근무했지만 건설 공부를 요즘 새로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삼성그룹의 핵심이었던 비서실 출신이다. 1994년 대리 때 '차출'돼 2008년 비서실의 후신인 전략기획실이 해체될 때까지 14년 동안 기획팀에서 근무했다. 1959년 고(故)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설치됐던 비서실은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결국 해체됐지만 경영 효율성 제고에 크게 기여해 삼성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 계열사에서 파견나온 인재들이 다 모였었죠. '졸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경쟁도 치열했고요. 나름대로 거대한 조직에 로열티를 가지고 열심히 일해 집에 못간 날이 아마 더 많을 걸요."
너무 평범해보이는 그의 이력서는 그래서 더 눈길을 끈다. 문경 점촌초교·문경중·대구 달성고·경기대 무역학과 졸업이 전부다. 그 흔한 석사학위도 없고 외국 유학 경험도 없다.
"여기까지 온 건 운이 좋았던 덕분이지만 선배 임원들도 이젠 공부 좀 해보라는 권유를 많이 하시죠. 하지만 저는 굳이 포장하기 싫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저 자신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스펙'에 목말라 하는 요즘 세태와는 다른 생각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는 사실 학창시절부터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우등생이었지만 고교 때 혼자 대구로 유학오면서 성적은 쭉 내리막길이었다. 가족(4남1녀) 모두 악기를 잘 다루는 가풍을 따라 배운 드럼 연주가 화근이었다. "설악산 수학여행 땐 아예 드럼을 갖고 가 관광버스 안에서 신나게 두들겼죠. 문경에서 평생 초등학교 교편을 잡은 선친에게는 항상 죄를 짓는 기분이었지만, 요즘도 회식자리에서 가끔 연주합니다."
대기만성형(大器晩成)형이라 부를 만한 그가 귀띔한 고백 하나. "대학 입학 예비고사 직전 벼락치기로 성적이 평소보다 잘 나왔어요. 담임선생님이 저보고 커닝했느냐고 놀리시기도 하더군요. 솔직히 그럴 생각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고사장 옆자리에 야구부 선수가 앉아서 포기했지요. 하하하···"
그는 평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후배들에게 노력과 책임감을 강조한다고 했다. "명문대 출신들 사이에서 솔직히 위축되기도 했죠. 하지만 제 경우 입사 후 첫 토익시험에서 우수상을 받은 뒤 자신감을 찾았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개발한다면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철두철미하게 능력 위주로 평가받는 현실에서, 자신이 맡은 업무는 책임진다는 자세는 필수입니다."
'명예롭게 살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순정파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소꿉친구로,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던 여자친구를 자주 만나기 위해 군 생활은 공군에 자원입대, K2공군기지에서 헌병으로 복무했다. 물론 지금의 아내 김광숙 씨다. 또 고교시절에는 하숙집 주인이 이사할 때마다 따라다녀 3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먼저 떠나기 전에는 절대 보내지않는다'는 스타일이죠. 군 제대 후에는 암으로 투병하시던 선친의 병수발을 드느라 복학을 1년 미루기도 했습니다. 유품으로 챙겼던 손목시계를 학교 도서관에서 잃어버린 뒤 미친듯이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울었던 기억도 나네요."
문경 영순면에서 태어난 그는 기업인으로서 생각해온 고향에 대한 조언도 솔직히 이야기했다. "대구경북의 경우 내륙이라는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또 정부·기업에 무턱대고 지원을 해달라는 억지도 통하지 않습니다. 경제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는 민간기업은 그야말로 돈이 돼야 움직이거든요. 대신 기업을 유혹할 만한 아이디어를 내 기업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경북의 경우 헬스케어·실버산업이 유망하다고 봅니다."
라틴음악·영화 감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그는 지난해 5월 난생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을 땄다. 작년 1월 임원으로 승진한 뒤 업무용 차량을 받았지만 면허가 없으면 키를 주지않는다는 회사 방침 때문이었다. "1시간 걸리는 대중교통으로 매일 출퇴근했었는데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차가 몇 달씩 주차장에서 그냥 서 있는 걸 보니 아깝더라고요. 간만에 공부 좀 했지요."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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