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이 코리안 악몽으로…

입력 2010-07-16 10:56:35

가정폭력 시달리는 결혼이주여성 현주소

시부모의 구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A(27)씨는 지난 4년간의 결혼 생활이 악몽이었다. 나이가 17세 차이가 났던 남편은 걸핏하면 술을 마셨고, 밤이 되면 변태적인 부부생활을 강요했다. 부부생활을 거부하자 돌아온 것은 욕설과 폭력뿐이었고 시부모의 구박도 심해졌다.

A씨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집을 나왔지만 앞날이 막막하다. 4년간 한국에 머물렀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도 없다. 국내법상 남편의 허락 없이는 국적 취득이 불가능하기 때문.

◆폭력, 감금 예사로

이달 8일 부산에서 베트남 이주여성 탓티황옥(20) 씨가 결혼 7일 만에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을 계기로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정폭력 실태를 살펴본 결과 너무나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경산에서는 22세의 베트남 신부가 결혼 한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같은 해 대구 달성에서도 21세 베트남 신부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가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구 베트남여성문화센터(VWCC)가 2년간 이주여성들의 상담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주여성들의 부부 갈등은 폭력, 가출, 이혼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전체 128건의 가정폭력 유형을 복수 응답으로 조사한 결과 물건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지르는 등 정서적 학대는 물론 신체적 폭력, 감금, 성적 학대 등 다양하게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1년 전 대구로 시집 온 흐엔(22) 씨는 "나도 돈 때문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편과 결혼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죽일 수가 있냐"고 격분했다. 뉴(22) 씨도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알려줬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부산 사건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두옌(29) 씨는 이 사건을 접하고 "터질 게 또 터졌다"고 여겼다. 2006년 한국으로 온 두옌 씨는 '농장주'라고 했던 남편의 말에 속아 시집온 경우다. 작은 규모로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짓던 남편은 의처증까지 있었다. 두옌 씨는 "한국 남성과 결혼하려는 이들이 있으면 (국제결혼은) 적극적으로 말리겠다. 이런 결혼은 지옥"이라고 치를 떨었다.

◆불법결혼 중개 횡행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정내 폭력 등 피해가 확산되자 시민·여성단체들은 국제결혼 알선업체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베트남 신부를 살해한 남편은 지난 8년간 60여 차례나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중증 정신질환자였지만 신부는 남편의 병력을 전혀 모른 채 국제결혼 알선업체를 믿고 결혼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6월부터 인권침해 소지를 줄이기 위해 기존 자유업의 국제결혼중개업을 등록제로 전환했지만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장삿속으로 국제결혼을 중개하는 알선업체와 브로커가 난립하고 있지만 관리 감독은 여전히 부실한 것. 국제결혼 알선업체들은 한국 남편이 병력을 속여도 돈만 내면 신원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결혼을 알선해주고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15개 단체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적인 결혼중개 관행이 횡행하는데도 관리 감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혼중개업체는 상대방의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 같은 사건은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한 단속과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여성문화센터 이예은 사회복지사는 "폭력은 언어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일어나기 시작한다"며 "한국 남편에 대한 사전 검증 시스템과 함께 한국인 남편과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상호 언어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곳의 전체 상담 건수(5천700여 건)의 3분의 2(3천400여 건)가 의사소통 문제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에 있는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은 5천 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남편들이 베트남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아예 없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