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계모임 뒷자리는 항상 수다로 이어진다. 수다는 대개 자녀 이야기나 남편 이야기다. 한 친구는 요즘 남편이 이유 없이 미워 죽겠단다. 연애결혼을 했는데도 그 애틋한 정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동숙자라 말했다. 대개 그런 권태기를 겪으며 한 단계씩 성숙해 가는 것이 부부애라며 누군가 이미 그 단계를 초월한 사람처럼 말했다. 반대로 어떤 집은 손수 물도 한 그릇 떠먹지 않던 남편이 설거지며 청소까지 도와주어 마치 신혼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라 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우리 부부 사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 부부는 사랑에 목맬 만큼의 연애 경험도 없고 보기 싫을 만큼 미워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니까 상대방을 최대한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운명처럼 살아왔을 뿐이다. 오랫동안 자영업을 해 온 남편과 나는 날마다 회사에 출퇴근하는 부부들에 비해 함께한 시간이 곱절은 넘을 것 같다. 그럼에도 한 번도 그 생활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제 다정하게 손 한 번 잡아준 적은 없지만, 묵묵히 아껴주는 깊은 속정은 무미의 밥맛이 오래 씹을수록 구수한 맛을 내는 것과 같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노부부의 퀴즈 맞히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우리 둘 사이를 뭐라고 하지'했을 때 정답은 천생연분이었는데 할머니는 '웬수'라 하였고, 다시 네 글자라 하였더니 '평생웬수'라 하였다. 말로는 평생원수라 하였지만 그들에게서 미운 정 고운 정을 함께해 온 진한 부부애를 느낄 수 있었다,
가끔 밥 대신에 피자나 통닭, 중화요리 같은 바깥 음식을 즐기기도 하지만 연거푸 두 끼만 먹으면 밥 생각이 절로 난다. 남편은 하루 세 끼, 일 년 삼백여 일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과 같다. 남편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화를 낼 때는 입안에서 맴도는 설익은 밥알처럼 낯설게 여겨지기도 하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성격이 무른 밥처럼 여겨져 속상할 때도 있었다. 그때는 주관이 없다고 타박도 했지만 이제 무른 밥조차 남편의 너그러운 성격이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구수한 밥맛에 끌리는 것은 남편의 존재가 내게 좀 더 소중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밥솥 안에 그득한 밥처럼 옆에만 있어도 든든한 존재가 남편이다. 부부는 함께할 때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 무덤덤한 감정이지만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허전함이 스며든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믿음이란 띠로 함께 묶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부부가 평생 함께할 이유로 충분하다.
화가 노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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