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산맥에 자생하는 풀이 있었다. 토착 원주민들이 그 풀에 무슨 이유에선지 불을 붙여 빨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 습관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유럽의 담배는 아프리카와 인도양을 지나 일본까지 전해졌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담배에 대한 기록은 1643년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지금 사람들은 담바고를 많이 심는다'라고 최초로 등장한다. 담배를 즐겨 피웠던 정조는 '차가운 몸은 덥혀주고, 더운 몸은 식혀주니 이 아니 좋은가'하는 담배 예찬론을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가 해롭다는 이야기를 안한 것은 아니다. 성호 이익은 담배 해악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담배의 해로움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50, 1960년대의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졌다.
문제는 이렇게 우리나라에 전해진 지 400년밖에 안 된 담배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5천만 남한 국민 중 무려 1천만에 가까운 흡연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담배 때문에 매일 150명이 사망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을 수개월 동안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이 250명인데 담배 때문에 이틀 동안 사망하는 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고, 2위는 뇌혈관 질환이고, 3위는 심장혈관 질환인데 담배는 위의 세 가지 모두에 주된 위험 요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든 보건복지부 장관이든 의사든 우리나라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담배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망 원인 4위는 자살인데 우연찮게도 흡연자들은 자살률도 높다.
처음에 금연운동을 할 때는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 금연을 주장했는데 점차 간접흡연이 해롭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금연 운동은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는 흡연자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건강도 해친다고 알려진 것이다. 간접흡연으로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져서 국제암연구소에서는 간접흡연 시 1급 발암물질이 발생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간접흡연은 천식을 악화시키고 심장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도 있다.
지난 5월 27일 국회에서는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었다. 개정의 골자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에 의해 다수인이 모이거나 오고가는 관할 구역 안의 일정한 장소를 금연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으며 이를 위반한 자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금연구역이 오로지 보건복지부장관만이 정할 수 있었으며 또한 이를 위반한 경우에도 경범죄처벌법에 의하여 범칙금 2만~3만원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도 오로지 경찰관이 현장으로 출동하여야만 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 단속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법 개정으로 소리 소문 없는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법에 의해 음식점과 술집을 비롯한 다중이 모이는 모든 실내 공간을 금연 구역으로 선포해야 하며 실외 공간이라 하더라도 공원이나 해수욕장 등의 휴게 공간을 금연 구역으로 선포할 수 있다. 또한 주거공간인 아파트에서도 발코니, 복도, 엘리베이터 등은 금연 구역으로 선포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옆집 흡연자가 복도에서 담배를 피워 여름에도 문을 열어 놓을 수 없었던 이웃 주민이 간접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다가 말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실외 흡연에 대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실내든 실외든 간접흡연의 피해를 당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4천만의 비흡연자들은 1천만의 흡연자들에게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를 요구하고 있고 이는 헌법에도 보장되고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출근할 때 앞사람이 흡연할 때 뒤따라가면서 담배 연기를 맡는 불쾌감을 호소한다. 이제는 혼잡한 거리와 체육경기장 관람석처럼 사람이 조밀한 공간 등 모든 실외 공간에서 금연이 선포될 전망이다.
흡연자들은 이러한 흐름에 초조해하기도 하고, 우리를 너무 밀어붙인다고 불쾌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 자유는 있지만 남들을 불쾌하게 하면서 고성방가를 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듯이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흡연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주변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불쾌하게 만들 권리까지는 없는 셈이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국립암센터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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