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한마리가 강에서 목을 축인다.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가롭다. 물빛은 푸르다. 파란 하늘, 한 조각 흰 구름이 강을 내려다본다. 햇볕은 따스하지만 무덥지 않다. 바람이 살랑댄다. 시원하다. 나무와 숲이 강물을 그늘로 감싸고 있다. 강은 산을 비틀어 흐른다. 고운 모래가 강을 따라가고 있다.
한 촌로가 백로와 멀찌감치 떨어져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피리 몇 마리가 꼬리를 흔든다. 한가롭게 노닌다. 노인도 한가하다. 미동조차 없다. 고기를 낚는지, 세월을 낚는지 모를 일이다. 강물도 조용히 흐른다. 산새의 지저귐만 간간히 귀를 간질이고 있다. 강과 마을에 고요와 평화가 흐른다. 생명은 제 영역을 지키며 어우러졌다. 노인도, 백로도, 산새도, 피리도, 나무도 다른 생명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강물은 그 생명을 품에 안고 흐른다. 풍요롭다. 아! 낙동강.
봉화군 소천면 현동3리 배나들마을. 마을 앞으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뒤로는 36번 국도가 울진과 봉화를 잇고 있다. 옛 나루터(고제나루)가 있었고 배가 드나들었다고 '배나들'이다. 강을 젖줄로 밭을 일구며 16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배나들 앞 강 건너 '고제', 뒤쪽 36번국도 뒷산 '중미'를 포함해 모두 배나들마을이다. 26년 전까지 이 곳은 고요하고 고립된 마을이었다.
1984년 36번국도와 함께 현동터널이 뚫리면서 배나들의 삶과 생활모습에 일대 변화가 생겼다. 소천면 소재지(현동 시내)로 가는 길은 훨씬 편리해졌다. 반면 고개를 넘거나 드럼통 배를 타는 일은 추억 너머로 사라졌다. 현동터널이 뚫리기 전 배나들 사람들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장을 보기 위해 소천면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현동역 쪽의 '막지고개'를 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강 건너 '고제'를 통해 '한뱀이(한밤마을)'를 거쳐 가는 길이었다.
◆드럼통 배 타고, 막지고개를 넘어
막지고개는 울진에서 봉화로 넘어가는 12고개 중 마지막 고개다. 막지고개는 배나들 사람들의 교통로이자, 울진 사람들의 장삿길이기도 했다. 이제련(84.여)씨는 "그 때는 짊어지고 댕겼어. 울진 사람들도 쪽지게(등짐장수들이 진 작은 지게)를 지고 와서 소천장(현 현동장)에서 대추 한 그릇에 5전, 우묵가시리 한 그릇에 5전씩 받고 팔았지"라고 했다. 고제와 한뱀이를 지나 소천면으로 가는 길에는 도라무통(드럼통) 배와 철길 터널의 아득한 추억이 서려있다.
김순래(73.여)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강 건너 고제 쪽 땅을 부치기 위해 사위를 시켜 도라무통 배를 만들었지. 그 때가 60년대쯤 될 것"이라고 했다. 고제에 살았던 김두호(58)씨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드럼통 배를 만들었다. 김씨는 "지금은 돌다리가 놓여 그냥 건너지만, 옛날엔 강물이 불면 건널 수 없었다"며 "10년 전 도라무통 여덟 개를 통째로 묶어 우애다(위에) 판자를 덮어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내 김춘화(54)씨는 "막대기를 가지고 노를 젓는 기 무슨 힘이 있어, 물살이 씬데. 애 아버지하고 두 남매가 막 떠내려가는데, 나는 발만 동동 구르고. 죽을 고비 몇 번 넘겼어"라고 했다.
◆철교를 지나 터널을 달려
강물이 많이 불면 일단 배나들에서 고제로 건너가더라도 또 한고비를 넘어야 했다. 고제에서 한뱀이로 넘어가는 나무다리가 물에 잠기기 때문에 영동선 철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고제와 한뱀이 사이에 30m 가량의 철길 터널과 철교가 있다는 것.
이제련씨는 옛날 삼남매를 등교시키던 때의 아찔한 기억을 털어놓았다. "한번은 아들 학교 델다 주고 다리 위 철길을 건너는데 기차가 굴(터널)에서 나오데. 그래 퍼뜩 건너가 사람 건네는 데(철길 옆)로 쏙 들어갔지. 그런데 아(이)들이 '엄마, 엄마' 하며 울고불고 난리 났지, 죽은 줄 알고. 거기 사람들 많이 죽었어. 쌀 지고 가다가 쌀가마니 떨어지고, 사람도 죽고…."
고제에서 소천초교를 다녔던 장현탁(57)씨도 기찻길로 학교 가던 일을 기억했다. "큰 물 질 때는 고제에서 한뱀이를 잇는 나무다리가 잠겨 무조건 철교를 건너야 했어요. 철로에 귀를 대보고 '잘잘잘' 소리가 나면 기다렸다 기차가 지나가면 터널로 무조건 뛰었지요. 터널 한 30m 되나?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요."
◆공병대와 배나들 주민은 현동터널을 뚫고
이제 울진과 배나들 사람들이 막지고개를 넘는 일은 드물다. 36번 국도를 통해 울진에서 봉화 배나들마을을 거쳐 소천면으로 들어가는 현동터널이 뚫렸기 때문이다. 1984년 30대였던 장현탁씨는 당시 평탄작업을 위한 부역에 나갔다.
"울진과 봉화를 잇는 길은 '군사도로'였지만 비포장이어서 차가 걸어 다닐 정도였지요. 민간업체가 하면 돈이 드니까 공병대 군인들이 와서 작업을 했지요. 현 국도가 생기기 전 자갈을 깨서 작업을 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모두 부역에 나갔어요. 예를 들어 30m면 30m씩 개인 할당을 해 깬 돌을 모아놓고 면 직원들한테 검사를 맡았어요. 그리고 깬 돌을 웅덩이나 파인 곳을 메우고 난 뒤 다시 검사를 맡았어요. 현동터널도 그때 뚫렸어요."
◆강은 대지를 적시고, 전기를 만들고
배나들은 강마을이지만, 논농사를 짓는 집은 없다. 모두 산비탈에 터를 잡은 데다 농업용수가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물은 배나들 사람들의 먹을거리와 생활의 근거가 되는 밭농사에 자양분을 주고, 전력 생산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홍문표(55)·나은경(44) 씨 부부는 강변 쪽 지하수를 식수로 쓰고 있고, 고제의 김중희(81) 씨는 강물을 끌어올려 콩, 고구마, 조,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 강기원(81)·박분남(86) 씨 부부도 대대로 배나들에서 강을 터전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봉화군 가정용 전기의 30% 가량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의 전력도 배나들마을 '한여울소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 사설발전소는 36번 국도를 감싼 산을 뚫어 북쪽 낙동강물을 남쪽 배나들로 끌어내린 뒤 그 낙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작가 권상구·조진희 ▷사진 박민우 ▷지도일러스트 이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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