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손주 같은 학생들이 '할머니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는데 기분 좋지! 그 기분을 어찌 알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생들이 등교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 손자 손녀 같은 학생들을 위해 횡단보도 교통봉사에 나서는 일흔 살 즈음의 열두 분의 할머니들. 학생들이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 '오냐, 잘 갔다 오너라'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간혹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학생들은 할머니들에게 혼쭐이 나기도 한단다.
구미시 도량1동에 있는 '구미시니어클럽 청소방역, 보람일터' 앞 횡단보도엔 매일 오전7시45분부터 오전8시30분까지 옅은 푸른색의 형광 조끼를 입고 노란 교통깃발을 든 2명의 할머니들이 3년째 출근(?)한다. 2명씩 5개조를 짜 한달씩 번갈아가며 인근 도산초교·구미여고·구미남중 등 세 학교 학생들의 교통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2006년 4월 어르신 일자리 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보람일터'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간 함께 일하면서 만난 열세 분의 어르신 가운데 청일점 임무원(71) 할아버지를 제외한 열두 분의 할머니들이 모두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일터 개소 때부터 일해 온 '대빵'으로 통하는 김귀점(76) 할머니를 비롯해 권계자(68), 유정자(72), 김선옥(74), 류복순(74), 박순연(67), 성월선(74), 이분남(72), 안순자(71), 박희옥(70), 김동생(73), 이한순(69) 할머니가 바로 그들이다. 지금은 '사랑고리봉사단' 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있다.
할머니들은 교통봉사가 끝나면 '보람일터'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대기업에 납품하는 휴대폰 케이스를 재활용하는 작업과 안경집 손잡이 조립작업을 한다. 오전, 오후 4시간씩 교대 근무하는 작업장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고민 상담소가 따로 필요 없단다. 한달에 한번 꼴로 생일 케이크도 자르며 서로 축하해준다. 제사음식은 점심 반찬거리로 더없이 좋다.
이렇게 봉사와 함께 보람일터에서 버는 돈은 20만원 정도. 많지 않은 금액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돈은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고 김귀점 할머니는 자랑한다. 특히 손주 용돈으로는 그만이란다. 적지만 손주의 대학 등록금으로 쓴 할머니도 있다고 일터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임경미 팀장이 귀띔한다.
할머니들은 시간이 나면 폐지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놓는다. 애써 모아놓은 폐지를 도난 당하기도 하지만, 폐지수입은 한달에 10만원쯤 된다. 이 돈 일부는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한 도시락 반찬구입 비용으로 내놓고 연말마다 다니는 요양원 방문 선물구입 비용으로도 쓰인다. 지금까지 선산과 칠곡, 김천의 요양원을 찾았고 갈 때마다 선물을 전달한다고 안순자 할머니는 소개한다.
"산에서 오라고 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여." "젊은이, 저승에도 시니어클럽이 있을랑가?"
"자원봉사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지." "여기 들어오려고 얼마나 많은 할매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좋은데 놔두고 뭐할라고 나가겠노?"
만수무강을 빌면서 헤어질 때 할머니들이 던진 간절한 청탁(?)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젊은 양반, 열심히 좋은 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제발 일거리 좀 구해줄 수 없겠나." 할머니들의 사업·활동영토는 끝이 없고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은 한낮 무더위 보다 더 뜨거웠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