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듣기만 해도 절로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말이다.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싸주신, 오늘 반찬은 뭔지 오전 수업시간 내내 기다려지던 도시락, 친구들과 모여서 함께 먹던 그야말로 '추억의 도시락'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그런 도시락은 상처가 되기도 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거나 김치만 매일 싸오는 친구들의 상처는 컸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서 점심 시간이면 슬그머니 나가서 수도꼭지의 물을 들이켜는 것은 예전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던 장면이기도 했다. 반찬을 보이기 싫어서 도시락 뚜껑을 덮은 채 가려가면서 먹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도시락이 지금 우리 대학생 이하 세대들에게는 생소하다. 1997년 초등학교부터 점진적으로 학교 급식이 시작되어 도시락을 싸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교급식 비율이 거의 100%에 달할 정도로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준비하는 점심을 먹고 있다. 도시락으로 생기는 위화감이나 상처를 완전히 사라지게 해준 획기적인 조처가 바로 '전면 학교급식'이다. 전면 무상급식을 하는 핀란드 등 두세 나라를 제외하고 우리처럼 100% 학교급식을 하는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미국과 영국만 해도 학교급식 비율이 각각 62%와 50%에 불과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야권에서는 전면 무상급식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국민들에게 다가갔고 이것이 주효해 승리를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가난을 증명해야 점심을 먹는다'라는 구호를 통해 현재와 같이 13%의 저소득층 자녀들이 위화감에 상처를 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학기초 급식비를 면제받으려면 핵생들에게 부모가 빈곤층이라는 증명을 제출하라고 한다는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래서 전면 무상급식을 통해 이러한 낙인효과(stigma effect)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전면 무상급식으로 소요되는 3조원의 재원은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재원 조달 방안까지 내세웠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먼저,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무상급식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스쿨뱅킹 (school banking)에 이미 개통된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일명 사통망)을 연결하면 된다. 스쿨뱅킹이란 학부모가 통장을 개설한 뒤 매달 급식비를 그 통장에서 인출하도록 하는 제도이고 사통망은 복지관련 수급대상자들의 정보가 통합관리되는 전산망이다. 이 둘을 연결만 하면 학생이 자신의 부모가 빈곤층으로서 생계급여 대상자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한 것을 우리 정부는 미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낙인효과를 없애기 위해 전면 무상급식을 하자는 주장에 엄청난 힘이 실리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전면 무상급식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 학교급식 시설을 이용하여 학기중에 저녁을, 그리고 방학중에 점심과 저녁을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일명 '야자' (야간자율학습)와 '방과후 학교'가 보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학기중 저녁 또한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는 중요하다. 또 맞벌이 부모들이 늦게 귀가함에 따라 자녀들이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실태를 감안하면 학기중 저녁을 제공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또 방학중 점심, 나아가 저녁까지도 학교급식시설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현재 학기중 무상급식 대상인 30만 명의 학생들에게 학기중 저녁과 방학중 점심과 저녁 모두 제공하더라도 1조원이 넘지 않는다. 그런데도 3조원을 들여 현재 돈을 내고 점심을 먹고 있는 87%의 학생들에게 점심을 무상으로 제공하자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가 닿지 않는다. 보편주의 혹은 가치재이니 하는 이념과 용어를 동원해서 전면 무상급식의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도무지 왜 13%의 저소득층 자녀들의 학기중 저녁과 방학중 점심보다 우선되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방선거는 끝이 났지만 전면 무상급식 주장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다수의 지자체장과 교육감들이 전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그동안 행정상 미비로 인한 낙인효과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런 뒤 무엇이 먼저인지를 국민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중산층 이상 자녀의 학기중 점심과 저소득층 자녀의 학기중 저녁과 방학중 점심저녁 중 무엇이 먼저인지를….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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