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성 장질환' 선두주자 한국형 치료법 연구 전념
영남대병원 소화기내과 장병익(46) 교수는 국내에서 염증성 장질환 연구의 선구자로 꼽힌다.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대뜸 질병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질병도 잘 모르고 찾아온 게 겸연쩍어서 난처한 기색을 했더니 장 교수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개 염증성이라고 하면 항생제를 먹으면 낫는 병으로 알고 있는데, 전혀 다르다"며 "게다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성 난치병으로 분류된다"고 덧붙였다. 그저 '장염'이 아니라 궤양성 대장염 및 크론병으로 대표되는 원인 불명의 질환이 바로 염증성 장질환이라고 했다.
◆크론병, 국내에선 희귀난치병
"쉽게 말하자면, 우리 몸에 나쁜 균이 들어오면 백혈구가 공격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백혈구가 대장이나 모든 소화기관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 그것이 염증성 장질환입니다. 대장을 공격하면 궤양성 대장염이고, 입부터 항문까지 소화관 어느 부위에나 침범하는 게 크론병입니다."
무서운 병이다. 제 몸을 적으로 알고 끊임없이 공격하는데, 아직 원인도 모른다니.
1999년부터 영남대병원 소화기내과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는 2003년부터 2년간 미국 연수를 가게 된다. 의사로서 전환점을 맞게 된 시기다. 20세기까지 염증성 장질환은 국내에서 드문 병이었다.
서양인에게만 걸리는 병으로 알았다. 21세기로 접어들며 마치 잠복해 있던 병이 활동을 시작한 듯 국내 환자가 급증했다. 크론병 발병률은 1980년대까지 인구 10만 명당 0.02명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로 따졌을 때 환자가 10명도 채 안 되는 수치. 그러다가 2005년 발병률은 4.0명을 넘어서 무려 20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년간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리나라 상황이 그랬다. 조짐이 이상하다는 것은 눈치채고 연수를 떠났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 장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관련 연구회를 만들어 병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아직 국내 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전체 조사는 못했지만 국내 크론병 급증은 사실입니다. 국내 환자는 5천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서구에서는 희귀한 질병이 아니어서 그저 '난치병'으로 분류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성 난치병'으로 봅니다."
염증성 장질환은 완치될 수 있는 질환은 아니지만 적절한 치료로 상태가 유지될 수도 있고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염증성 장질환을 오래 앓게 되면 대장암 발생 위험도 커집니다. 증상이 의심스러울 경우, 반드시 의사를 찾아 상담을 해야 합니다."
◆서구-국내 발병 메커니즘 달라
그는 힘들게 공부했다. 어쩌면 치열하게 공부에 매달렸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고3 때 학력고사를 치르고 난 뒤 아버지의 사업체가 부도를 맞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가족들은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했고 그는 의과대학에 지원했다. 비록 어려운 시기였지만 친척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그저 공부밖에는 안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전체 석차 2등이었습니다." 개인사는 별로 말할 게 없다는 그를 여러 번 채근해서야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와 함께 여섯 식구가 단칸방에 살아야 했다. 집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에 그는 도서관에서 새우잠을 자며 공부에 매달렸다. 인턴을 마칠 때 그는 1등이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고집스레 한 분야에 매달리는 성격은 여동생도 마찬가지. 간호사였던 여동생은 본격적으로 의학을 공부하겠다며, 뒤늦게 의과대학에 진학해 지금은 어엿한 내분비내과 전문의가 돼 있다.
소화기내과를 전공한 이유에 대해 "외과 수술할 때 피 냄새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여러 분야 중에 특히 소화기에 주목한 까닭은 치료 효과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극적이기 때문이었다. 금세 나타나는 치료 효과를 보면 흐뭇해졌다.
미국 연수 시절, 그는 단지 치료 기술을 배우는 수준을 넘어 첨단 치료연구에 동참했다. 대학병원 의사로는 드물게 2년이라는 긴 시간 연수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배우려는 열의를 높이 산 동료 의사와 병원 측의 배려 덕분이었다.
"국내의 염증성 장질환, 특히 크론병 치료는 서구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서구 환자와 국내 환자는 발병 메커니즘이 다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내 환자의 특징을 찾고, 그에 맞는 치료법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맡은 셈이죠."
◆2년 연속 세계 3대 인명사전에
2005년 이후 그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 300여 명, 크론병 환자 200여 명을 진료했다. 지금은 영남지역 전역에서 환자들이 그를 찾아온다. 병명도 낯설던 시절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했고, 최근 3년간 국제 저명 학술지에 25편의 관련 논문(SCI급 9편)이 실렸고, 국내 학술지에도 35편이나 게재됐다. 2년 연속으로 세계 3대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지만, 아직 환자들에게는 안타까움이 많다.
"이유없이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거나 혈변을 보는 증상이 한 달 이상 계속되면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배 아프고 설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병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 증상 이후 염증성 장질환 진단을 받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최근 20, 30대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런데 그저 장에 탈이 났다며 병원에 늦게 온다. "완치가 안 되는 병이다 보니 환자 만족감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치료를 받아도 증상이 반복되기 때문이죠.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진료 중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대구경북 크론병동우회와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참석하는 크론병 연구회도 만들었다. 아울러 대한장연구학회 보험이사도 맡고 있다. 크론병 치료 주사제는 종전까지 1년만 보험혜택이 주어졌다. 주사제 효과가 2개월밖에 지속되지 않아 1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당국을 상대로 끈질기게 설득하고 병의 증세를 알린 덕분에 지금은 보험혜택 기간이 3년으로 늘었다.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도 꾸준히 이뤄진다. 서울지역 5개 병원 외에 지방에서 유일하게 영남대병원이 크론병 신약 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전세계적 규모의 시험 2건을 포함해 지금까지 5건의 임상시험을 했고, 3, 4건 추가 시험도 예정돼 있다. 그만큼 그는 관련 질환 치료에 있어 누구보다 무기가 많은 셈이다. '진정 도움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그는 오늘도 연구실 불을 밝히고 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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