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로고보다 확실하다! 숫자 마케팅

입력 2010-07-10 07:11:25

요즘 캐주얼 의류에서는 로고를 대신해 숫자를 활용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알쏭달쏭한 숫자들 속에 재미있는 브랜드만의 스토리와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것. 숫자는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하고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요즘 캐주얼 의류에서는 로고를 대신해 숫자를 활용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알쏭달쏭한 숫자들 속에 재미있는 브랜드만의 스토리와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것. 숫자는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하고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1, 3, 8, 55, 89.'

요즘 캐주얼 의류에는 알쏭달쏭한 숫자들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로고를 대신해 숫자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이 같은 숫자 로고는 의미가 명확한데다 누구나 공감하고 기억하기 쉽다는 숫자의 특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뉴머럴'(numeral) 마케팅이라고 불린다. 각 브랜드마다 숫자로 풀어내는 그들만의 패션 언어를 들어보자.

◆숫자, 무슨 의미야?

캐주얼 브랜드 '빈폴' 매장에서는 유난히 '1'이라는 숫자를 많이 볼 수 있다. 바로 '퍼스트 플레이어'(First Player) 라인이라고 부르는 이 디자인은 '캐주얼 1등 브랜드, 1등 제품, 1등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빈폴은 매장 매니저들의 교육 과정에서도 숫자 '1'의 의미에 대한 강의를 따로 편성할 정도로 그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89'라는 숫자도 자주 보인다. '89'는 빈폴 브랜드의 런칭 연도인 1989년을 의미하는 것. 대백프라자 빈폴 매장 직원은 "특히 올해 런칭 21년을 맞이하면서 브랜드의 전통과 역사, 정신을 기리는 차원에서 이 같은 라인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폴로'는 티셔츠나 스웨터 등에 숫자 '3'을 즐겨 사용한다. '3'은 폴로 경기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유능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번호로 힘, 말타는 기술, 정확한 패스 능력 등이 뛰어난 지휘자를 의미하는 것. 폴로 경기에서 지휘자의 역할을 하는 3번 선수처럼 최고가 되는 브랜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야구로 따지자면 '4번 타자' 같은 의미다. 숫자 '4' 역시 자주 사용되는데 4번은 폴로 경기에서 수비수를 의미한다. 폴로 경기의 정원은 4명이지만 '5'가 쓰인 셔츠가 지난 2007년 시즌 한정판으로 출시됐기도 했다. 이는 지난 1878년 브룩클린에서 있었던 미국의 퍼블릭 폴로 시합 경기에서 한쪽 편에는 4명의 선수가, 다른 한편에 이례적으로 5명의 선수가 경기를 준비했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5명의 폴로'라는 해당 시합의 독특한 정신을 기린 것이다.

'헤지스'에서는 숫자 '8'이 자주 등장한다. '8'은 브랜드의 정신과 콘셉트를 가져온 '로잉'(조정·rowing)에서 유래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귀족 스포츠인 로잉 경기 팀원이 8명이라는 점을 모티브로 한 것. 가끔 숫자 '28'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캠브리지 대학의 로잉팀이었던 헤지스클럽의 창단 연도인 1928년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스포츠 브랜드 '이엑스알'(EXR)이 사용하는 숫자는 '55'는 조깅할 때 100m에 55초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피로가 누적되지 않는 가장 합리적인 운동시간이라는 통계를 활용한 것이다. '클라이드'의 고유 숫자가 된 '75'는 행운의 숫자 7과 재운 및 신비스러움을 나타내는 5를 합친 것이고, '시슬리'(Sisley)의 '25'는 소녀가 아닌 여자로 거듭나는 나이 25살을 의미하는 것으로 브랜드 타깃층을 대변한다. 힙합 패션 브랜드 '후부'는 숫자 '05'를 활용한다. 후부는 주로 빨간색 등 원색 계열의 의상을 내놓는데 이 색은 조직원이 2천 명으로 추정되는 갱단 '블러드'의 색깔이며, 05라는 숫자 역시 블러드에게 상징적인 숫자라고 한다.

그 외에도 캐주얼 의류 브랜드 'NII'는 1927년 미국 아이비그룹의 대학이 주축이 되어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조직한 럭비 협회 뉴욕 아이비리그 인스티튜트(Newyork ivyleague institute)의 이름이다. 이 브랜드에서 사용하고 있는 '27'은 1927년을 의미한다. 골프브랜드 '엘로드'는 젊은 골퍼를 위해 '72 by 엘로드' 라인을 출시했는데 엠블럼에 쓰인 72는 골프 경기의 이븐파를 뜻하며, '잭니클라우스'는 브랜드 론칭 25주년을 기념해 숫자 '25'를 활용한 엠블럼을 제작했다. '타미힐피거' 티셔츠의 '85'나 '헨리코튼' 셔츠의 '78' 등은 각각 브랜드가 시작된 해인 1985년과 1978년을 의미하고 있다.

◆숫자 마케팅

숫자 장식은 브랜드명을 감추면서도 그 가치를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 시선을 집중시키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숫자를 강조한 이런 방식을 '뉴머럴'(numeral)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이는 숫자가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무한대에서 제한된 기준까지 숫자는 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기준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활용 범위가 다양한 것. 더구나 숫자는 세계 공통으로 사용되는 상징 체계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명확해 누구나 공감하고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속에 문화적 코드와 의미를 담으면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제품이 갖는 특성을 인지시킬 수 있고 브랜드 노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목표 외에도 마케팅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려는 전략도 숨겨져 있다. 요즘 대부분의 TV 오락 프로그램들이 출연자가 입고 나온 의상의 브랜드 로고를 모자이크 처리해서 내보내고 있기 때문. 하지만 이 같은 모자이크 처리는 연예인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는 캐주얼 의류업체로서는 치명적인 것이다. 이런 모자이크를 피해가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숫자. 일각에서는 "숫자는 아무런 제재 없이 공중파를 탈 수 있어 의류업체들이 로고를 숫자로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다.

대구백화점 본점 스포츠 담당 석종훈 대리는 "캐주얼 의류 대부분에 숫자가 프린트돼 있거나 붙어 있을 정도로 브랜드 의미를 담고 있는 숫자 마케팅은 일반화되고 있다"면서 "숫자의 오묘함과 창조성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숫자 마케팅은 식품을 비롯한 생필품에 이어 의류에까지 유행하고 있어 앞으로도 숫자를 이용한 브랜드 마케팅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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