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태의 시와 함께] 카렌다 호수 / 서정춘

입력 2010-07-08 07:30:53

나에게는 참깨밭의 꿀벌 같은

하도나 이쁜 늦둥이 어린 딸이 있어

오늘은 깨잘도 입에 달아주면서

카렌다 걸어놓고 숫자를 읽히는데

아빠

2는 오리 한 마리

아빠

22는 오리 두 마리

아빠

우리 함께 호수공원에 갔을 때

뒷놈 오리가 앞놈을 타올라 물을 먹여 죽였어요

하길래설랑

나는 저런저런 하다가

나도 호숫가 물소리로 그럼그럼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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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잘'을 검색해 보니, 강정이나 과자를 일컫는 전라도의 방언이라고 하네요. '늦둥이 어린 딸'처럼 '이쁜' 말입니다. 손녀딸인지, 실제 손녀 같은 늦둥이 딸인지는 상관없이,(아니, 실제로 손녀 같은 늦둥이 어린 딸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더 한없이 예쁘겠습니까) '참깨밭의 꿀벌'처럼 '하도나 이뻐'하는 시인의 마음이 실로 애살스러울 지경입니다.

아빠, 아빠, 아빠, 하고 말머리마다 반복해 부르는 아이의 동심 가득한 어여쁨이 입말 고스란히 살아있는 문면(文面) 가득 파문처럼 번져갑니다. 이토록 천진무구한 동심이란, 어른들로 하여금 방 안 바람벽에 걸린 카렌다와 놀러 갔던 호수공원을 단숨에 '카렌다 호수'로 묶어 주고, "저런저런" 하던 일을 금세 "그럼그럼" 하게 만드는 '큰 긍정'의 힘을 가졌습니다. "뒷놈 오리가 앞놈을 타올라 물을 먹여 죽였"다고 해도 '그럼그럼' 하고 끄덕이게 하는 힘 말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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