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준(가명·9·대구 북구 산격동) 군의 소원은 학교 운동장을 맘껏 달려보는 것이다. 이 군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병을 앓고 있고 가슴 속에는 인공혈관이 박혀 있다. 9살밖에 안 됐지만 심장을 여는 대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았다. 심장병이 민준이 가슴에 남긴 것이 비단 수술 자국만은 아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아이의 꿈도 상처가 되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체육과 미술이 싫은 아이
민준이는 '할로씨 4증후군'과 '폐동맥 폐색증'이라는 병을 안고 태어났다. 심장판막에 구멍이 생기고, 골반 부위의 정맥에 있던 큰 혈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폐동맥을 막아서 생기는 병이다. 셔츠 사이로 구멍처럼 생긴 수술 자국이 눈에 띄었다.
민준이는 체육시간이 가장 싫다고 했다. 신나게 뛰어노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구경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체육시간이 되면 혼자 교실에 남아 리코더를 분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지는 법을 일찍 터득한 셈이다.
잦은 수술로 '안면장애'라는 후유증도 생겼다. 오른쪽 얼굴에만 땀이 날 뿐, 왼쪽 얼굴에는 땀이 흐르질 않고 시뻘겋게 달아오르기만 한다. 이런 그를 보고 친구들은 '장애인'이라고 놀려댄다.
미술시간이 되어도 민준이의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엄마 김미숙(가명·36)씨는 아이가 1학년 때 학교에 불려가야 했다. 담임 선생님이 "민준이가 선생님에게 대들었다"며 엄마를 호출했던 것이다.
선생님이 사각형 안에 색칠을 하라고 했는데 민준이가 자꾸 사각형 바깥에다 색칠을 해 혼을 냈는데, 아이가 "나는 사각형 안에 색칠하고 있단 말이에요!"라고 소리를 쳤단다. 사실 민준이는 두 살 때 수술을 하다 신경이 손상돼 사물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수업시간을 채우는 것조차 힘들어 2교시가 끝나면 교문을 나서야 하는 민준이. 엄마는 결석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친구들과의 사이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사랑을 똑같이 나눠주지 못해 미안한 엄마
출생 당시 민준이의 몸무게는 1.9㎏이었다. 스스로 호흡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세상과 만난 처음 날부터 의료장비의 힘을 빌려 숨을 쉬어야 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병원생활. 아직도 민준이는 학교보다 병원엘 더 자주 간다. 미숙 씨는 24시간 아들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민준이에게는 올해 6살이 된 남동생 준범이가 있다. 엄마의 사랑이 형에게만 향하는 게 싫어서일까. 준범이는 형이랑 자주 싸운다. 미숙 씨는 "얼마 전 준범이가 형이 밉다고 민준이를 막 때렸다"고 했다.
현재 준범이는 '틱장애'(신체 일부를 아주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증세)를 앓고 있다. 증세가 심해지면서 석 달 전 어린이집도 그만뒀다. 완강하게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우는 아이를 때려서 억지로 보냈더니 결국 펑펑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숙 씨는 "지금도 다니던 어린이집 버스를 보면 내 뒤로 숨는다"며 "첫째에게만 매달려 둘째에게 신경 써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삼켰다. 이제 엄마는 민준이와 준범이 둘에게 사랑도 칼로 자르듯 공평하게 나눠주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엄마는 민준이를 보고 '애어른'이라고 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철이 일찍 들었다. 동생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도 다 이해한단다. 지난해 민준이는 반수면 상태에서 골반에 철사를 꽂아 심장에 있는 인공 혈관에 찌꺼기를 걸러내는 힘든 시술을 받았다. 어른이 해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민준이는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참았다. 간호사 누나가 "소리내서 울어도 된다"고 해도 아들은 "엄마가 걱정한다"며 소리 내 울지 않았단다. 벌써 엄마 걱정을 하는 어린 아들을 보면 미숙 씨의 가슴이 더 아려온다.
◆잦은 수술에 점점 더 어려워지는 가정형편
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 때문에 민준이네 가정형편이 넉넉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태 큰아들 밑에 들어간 병원비와 수술비만 합쳐도 3천만원이 족히 넘는다. 치료비가 모자라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 집마저도 담보로 잡히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했다.
8년 전, 민준이 아빠 이경민(가명·37) 씨는 시장에서 잡화 배달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민준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시도 때도 없이 병원 신세를 지는 아이를 챙기며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 병원비를 벌려고 아빠는 공장에서 대리석 가공일을 시작했지만, 기계에 손가락이 빨려들어가 오른쪽 검지 뼈가 다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로는 일을 계속하긴 하지만 손에 힘이 없어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보니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준이 할아버지마저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가뜩이나 힘든 살림이 더 어려워졌다.
앞으로 몇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할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민준이. 아이의 두 번째 꿈은 "흉부외과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처럼 심장이 아픈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단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맘껏 운동장을 달릴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말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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