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프런티어] 계명대 동산병원 정형외과 민병우 교수

입력 2010-07-05 07:48:56

인공고관절 시술 年 350~400건, 세계인명사전 단골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증'이라는 질병이 있다. 고관절(엉덩이관절)은 다리 위뼈인 대퇴골의 엉덩이쪽 끝부분, 즉 대퇴골두가 '관절낭'이라는 주머니 모양 구조 안에서 연골(물렁뼈)로 엉치뼈와 연결되는 구조다. 고관절을 구성하는 물렁뼈는 일단 손상을 받으면 재생이 안된다. 손상 정도가 심해지면 인공 관절로 바꿔야 한다. 연골이 있는 대퇴골두에 피가 통하지 않아 조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바로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증이다. 골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지방이 쌓이면서 혈액 순환이 안되고, 결국 괴사에 이르게 되는 것.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증의 세계적 대가

계명대 동산병원 정형외과 민병우(51) 교수(부원장)는 이런 괴사증 치료 및 인공 고관절 수술의 대가다. 영남지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고관절 시술을 하고 있다. 연간 350~400건의 수술이 민 교수의 손 끝에서 이뤄진다. 인공 고관절 수술은 대개 55세 이후에 받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들어 젊은 연령층에서도 많이 이뤄진다.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증은 전체 인구의 1, 2%가 앓고 있는 질병으로 연간 1만5천 명 정도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지나친 음주입니다. 30, 40대 남자에게 주로 발병하죠."

괴사증 연구는 민 교수 덕분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980년대 후반, 그가 레지던트를 하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을 때만 해도 무혈성괴사증을 소개하는 수준이었다. "술과 인체내 지방 대사가 이 질병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죠. 어떤 메커니즘으로 병이 진행되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질병은 전세계적으로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에만 많은 질병입니다."

서양에서도 발병하지만 임상사례가 적다보니 연구는 더뎠다. 따라서 매년 수백여 건의 수술 치료에 나서는 그의 연구 성과는 세계적으로 호평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명한 국제전문학술지에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증뿐 아니라 인공관절 치환술, 고관절 골절 등에 관해 발표한 논문이 100여 편에 이른다. 2004년부터 세계인명사전에 등재되고 현재까지도 세계 3대 인명사전에 해마다 이름이 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5년 세계인명사전 중 하나인 I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지식인', 2010년 '21세기 2천 지성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조기 발견이 쉽지 않은 질환

"외상 때문에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음주입니다. 일주일에 400cc 이상 알코올을 섭취하는 경우, 이 병에 걸릴 가능성이 11배 이상 높아집니다. 이는 일주일에 소주 4.5병, 맥주 11병에 해당합니다."

조기에 진단을 받으면, 수술까지 가지 않을 수 있다. 민 교수에게 괴사증 때문에 찾아오는 환자는 연간 600여 명에 이르지만 이들 중 인공 고관절 수술을 받는 환자는 350명 미만이다. 즉 50%가량은 처방에만 잘 따르면 수술을 피할 수 있다는 뜻. 사실 이는 놀라운 수치다. 괴사증 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수술부터 권하는 경우가 많다. 인공 관절을 피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반가운 소식.

문제는 조기 발견과 지속적인 치료다. 그런데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민 교수는 이 부분은 꼭 넣어달라며 당부했다. "괴사증이 생기면 먼저 무릎 통증을 호소합니다. 또 허리 아래쪽이 아픈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관절염이나 디스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만 치료해서는 안 됩니다. 정작 원인은 괴사증인데 그로 인해 생긴 증상만 치료한 셈입니다." 치료 시기를 놓쳐서 다리를 절둑거릴 정도가 되면 수술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괴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여서 무너진 연골 조직을 되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이 조기 발견하면 2, 3년가량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 민 교수가 유명세를 떨치는 이유는 깔끔한 수술 실력뿐 아니라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도 통증 시작 및 괴사 진행 시기, 괴사 부위 및 정도 등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하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도 노력

그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지금도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30분 이상 학교 운동장을 속보로 걸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7시 30분이면 출근해서 진료 준비에 나선다. 밀려드는 외래진료와 수술을 마친 뒤에도 밤 늦도록 연구실 불은 꺼질 줄 모른다.

종전에는 수술 부위를 20cm 이상 절개해야 했지만 그는 관절 주위 근육이나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는 미니절개술을 이용한 인공관절 수술을 도입했고 지금도 회복시기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수술법을 연구 중이다. 유난히 한국인에게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증이 많은데 착안해 인종적 차이에 대한 발병 원인 연구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00년 인공관절의 획기적 변화가 왔습니다. 종전에는 인공관절이 닳아버리기 때문에 10년내 재수술이 30%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신소재는 마모율이 이전 소재의 10분의 1밖에 안됩니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런 신소재를 도입한 수술에 나섰다. 2000년 11월부터 2003년까지 137건의 수술을 했고, 지금까지 7~10년이 지났지만 단 한 건의 재수술도 없었다. 신소재를 이용한 인공 고관절 수술에 대한 연구 논문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

"몇 해 전 인공 고관절 수술을 했던 40대 남자 환자가 생각납니다. 실직한 뒤 절망 속에서 매일 술만 마시다보니 괴사증이 왔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는 더욱 술에 기대어 살았죠. 자살까지 생각했답니다." 환자는 인생을 포기하며 살았는데, 부인이 강제로 끌어오다시피 병원으로 데려왔더란다. 민 교수는 독지가들에게 부탁해서 무료로 인공 관절 수술을 받도록 했다. 그 환자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다시 취직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떤 의사가 되고프냐는 물음에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면서 인술을 펴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며 "첫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웃어보였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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