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멕시코만 원유 유출
시커먼 원유를 뒤집어쓴 갈색 펠리컨이 가늘게 도움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다. 기름 속을 헤엄치던 바다거북은 멸종 위기에 처했고, 고래의 시체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바다 속 새우와 고기는 씨가 말랐다. 아름답던 해안은 검은 기름파도로 뒤덮인 지 오래다. 발생 75일째를 맞은 미국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태는 인간이 환경에게 저지른 최악의 테러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러나 기름이 흘러나온지 석달이 다 되도록 끔찍한 재앙의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기름 유출도 막지 못하면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한 생태계 피해가 수십년 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환경 재앙이 후손들에게까지 멍에를 씌우는 셈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환경재앙
현재 영국 석유회사 BP의 원유시추시설에서 유출되는 원유의 양은 하루 1만2천~1만9천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2007년 서해 앞바다를 뒤덮었던 태안 유조선 충돌 사고의 전체 유출량(7만9천배럴)이 4일마다 멕시코만으로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까지 총 유출량은 80만~130만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로 기록됐던 1989년 알래스카 연안 엑손발데스호 사고의 유출량(25만 배럴)의 3~5배나 되는 양이다. 유출된 기름은 멕시코만에서 서울시 면적의 약 40배인 2만4천㎢의 기름띠를 형성하고 있다. 미시시피주의 해안 72㎞가 원유 유출 영향을 받았고 루이지애나와 앨라배마, 플로리다까지 합치면 원유 유출의 피해를 본 지역은 총 303㎞에 이른다.
지금까지 800마리가 넘는 조류와 멸종 위기의 희귀 바다거북 353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고, 돌고래와 향유고래 등 포유류 40마리 이상이 숨을 거뒀다. 기름 제거 작업 등에 참여한 사람들도 현기증과 두통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 보건당국은 장기적으로 중앙신경시스템이나 혈액·콩팥·간 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세계 최대 해양생물 서식지인 브레튼 국립 야생생물보호구역 가운데 최소 10곳에 원유가 밀려 들었다"고 보도했다. 이 일대는 어류 445종, 조류 134종, 포유동물 45종, 파충류 32종 등 모두 600여 종에 이르는 생물체가 서식하는 야생동물의 보고다.
환경오염은 심해까지 위협하고 있다. AP통신은 최근 해저에 형성된 거대한 원유 기둥에 의해 해수면과 토양 외에 심해 생태계도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유 기둥과 접촉한 물고기, 어패류, 플랑크톤 등이 오염되며 바닷속 생태계가 먹이 부족 현상과 먹이사슬이 파괴되는 등 부작용을 겪는다는 것이다. 또한 유정 주변의 메탄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서 산소가 고갈돼 생명체가 살지못하는 '죽음의 지대'도 형성되고 있다.
어업 등 다른 산업도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멕시코만 지역은 미국 전체 새우 공급의 75%, 굴 공급의 67%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미국산 해산물 가격 중 멕시코만에서 양산되는 굴은 67%, 새우는 80%나 값이 폭등했다. 사고 복구 및 배상책임을 지고 있는 BP의 경제적 손실은 최대 6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아직도 모호한 사고 원인
원유 유출이 시작된 이유에 대해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BP측은 사고 발생의 원인을 석유시추 시설의 부실한 장비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안전보다는 무리한 비용 절감에 매달리던 BP의 태도가 재앙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BP가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 며칠 전 비용절감을 이유로 '시멘트 케이싱' 방식을 통해 유정 윗부분을 봉합했다"고 보도했다. 시멘트 케이싱 방식의 경우 케이싱 파이프 주변을 시멘트가 확실히 막아주지 않으면 가스가 새어나가는 등 위험성이 높다. BP가 위험 판정을 받은 유정 설계 방식을 수년동안 사용해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BP는 2003년 7월 이후 건설한 심해 유정 중 35%에서 '롱 스트링(long string)'이라고 불리는 비용이 적게 드는 설계방식을 채택했다. 바다 밑에서부터 유정 바닥까지 하나의 긴 파이프 줄을 사용하는 이 방식은 비용이 저렴하지만 천연가스 유출 위험이 있다.
또 미국 헨리 왁스먼, 바트 스투팍 하원의원은 BP는 탐사 경비를 줄이려고 사내·외의 안전 경고를 수차례 무시하고 작업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두 의원에 따르면 BP는 21개를 써야 되는 '센트럴 라이저(드릴 파이프를 유전 구멍 중앙에 위치시켜 주는 장치)'를 단 6개만 사용했다. 또 파이프가 정중앙에 놓이지 않으면 시멘트에 균열이 생겨 메탄가스가 샐 수 있다는 경고도 무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유 유출 당분간 계속될 듯
원유 유출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있지만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출 지점이 해저 1,500m나 되는 심해여서 수온이 낮은데다 메탄가스로 인한 질척한 얼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BP는 당초 4층 건물 높이의 '오염물질 차단 돔'을 씌워 원유가 유출되고 있는 철제 파이프 구멍을 막으려 했지만 돔 내부에 얼음 결정체가 생기면서 실패했다. 이후 골프공과 타이어 등 고체 폐기물을 원유유출 지점에 쏟아붓는 '정크 샷(junk shot)'이나 해저 유정에 있는 폭발방지기에 점토 함량이 높은 액체를 쏟아부어 유출을 막는 '톱 킬(top kill)' 방식도 시도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일부에선 핵폭탄으로 유정을 막아버리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오기도 했다.
BP는 지난달 4일 손상된 파이프를 절단하고 유정 위에 깔때기 모양의 뚜껑을 설치해 기름을 빨아들이는 '톱 캡(top cap)'을 설치해 하루 1만 배럴의 기름을 뽑아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는 8월 감압 유정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흘러나오는 기름을 완전히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감압 유정은 해저 매장 기름까지 연결된 시추용 파이프 아래쪽에 새 파이프를 박아, 그 파이프를 통해 기름을 뽑아내는 장치다.
이 시기가 허리케인 시즌과 맞물려있어 수습이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 해양대기관리처(NOAA)는 올해 약 14~23개의 폭풍과 7개의 허리케인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대서양의 첫 허리케인 '알렉스'가 멕시코만 서쪽을 지나 지난달 30일 미국 텍사스 남부와 멕시코 북동부 지역에 상륙하면서 수습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BP의 유정 통제 작업이 실패할 경우 최소 2년간 원유가 유출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형편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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