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떤 바캉스族?…휴가일정 잡기 4가지 유형

입력 2010-07-03 07:17:36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달력이나 개인적인 월간 계획표에는 빨간 펜이나 굵은 펜으로 휴가 일자를 미리 확정해 둔 이도 있겠고, 아직도 직장 상사가 언제 휴가를 갈지 눈치를 살피며 '최선이 아니면 차선' '최악이 아니면 차악'의 날짜라도 선택하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을 위해 이번 휴가만은 이 기간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주변에 욕을 먹더라도 좋은 날짜를 사전에 못박고 나서야 한다. 물론 이 같은 무례한(?) 상황은 가급적 자주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대개 5년을 주기로 한 해 정도 이렇게 하면 큰 마찰 없이 넘어갈 수 있다. 3, 4개월 전부터 부서장이나 동료, 선·후배들에게 미리 올 여름 휴가는 이런 사정 때문에 이 날짜에 가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는 센스도 필수.

하지만 대부분 직장인들의 휴가 일정 잡기는 서로 일정을 조정하고 조금씩 양보하는 편을 택한다. 부서 내 경쟁이 치열하거나 성과주의에 내몰린 샐러리맨들은 어쩔 수 없이 휴가도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경우가 적잖다.

직장인을 비롯해 조직 내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얘기를 종합적으로 들어본 결과 휴가잡기 유형은 크게 4가지로 갈라졌다. 이번 휴가에는 어떤 전략으로 일정을 잡고, 다음 휴가 때는 또 어떤 상황을 만들어 실속을 챙길지 한번 생각해보자.

◆쐐기형 "이번에 로마갑니다."

일단 지르고 보는 스타일. 회사원 최민성(35) 씨는 지난해 여름 휴가로 7박 8일간 이탈리아 로마를 다녀왔다. 최 씨는 지난해 부장을 비롯해 선배, 동기들에게 엄포하듯 오래된 계획이라며 무조건 7월 마지막 주에 로마로 갈 것이니 알아서 휴가를 잡으라고 미리 쐐기를 박아버렸다.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일단 비행기 티켓도 발권하고 모든 준비를 완료한 뒤 눈 질끈 감고 과감하게 선수를 쳤는데 효과가 있었다"며 "다들 어안이 벙벙했겠지만 이번엔 작정하고 저러는구나 생각하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소 권위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공기업의 한 부장은 지난달 말 휴가 일정 결정 방법을 공표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향하는 하향식 휴가 일정 정하기 방식이다. 부장이 가장 원하는 기간에 일정을 잡으면 다음 계급 순으로 날짜를 잡고, 막내나 신입사원은 남은 날짜 중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해야 한다. 이 부장은 "오래 근무한 사람이 대접받도록 이렇게 정해 놓으면 세월이 지나면 어차피 돌고 도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유형은 팀내 화합을 깨뜨리기 일쑤다. 민주화된 요즘 조직문화에 잘 맞지도 않는다. 일방적인 '나 먼저'는 명분도 약하고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내 팔 내가 흔드는 시대'인 만큼 필요할 때 아주 과감하되 요령껏 밀어붙여야 한다.

◆눈치형 "속앓이 심해요."

비유해서 말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한 케이블TV에 유행하는 한 CF처럼 '휴가, 이때 가면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대충 이런 심정이다. 괜히 어설프게 먼저 휴가 일정 잡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 본인 성격도 그렇고 그 일정을 고집할 명분도 약해 '쐐기형'처럼 나서지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것이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조현수(33) 씨도 이런 케이스. 휴가철만 되면 괴롭다. 휴가 성수기인 7월 말은 업무가 바쁜 시기라 이때 먼저 휴가를 가겠다고 누가 먼저 나설지 눈치보기가 치열하기 때문. 특히 나이가 비슷한 사원들끼리 눈치보기 전쟁이 더하다. 좋은 날짜를 선점하기 위해 상사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도 마다않는다.

유통업에 근무하는 이민수(32) 씨는 팀 내에서 혼자 미혼이다 보니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휴가 일정을 다 정하고 나면 그 날짜를 피해 "그럼 제가 그 날짜에 가겠습니다"라고 힘없이 말하는 경우가 3년째 반복되고 있다. 그는 "애인도 없는 것으로 다들 알고 있어서 제가 먼저 눈치를 보며 휴가 때 발언권을 맨 나중에 가진다"고 말했다.

눈치형이 많다는 얘기는 그만큼 하위 직급에 있는 이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하급자라도 필요할 때 자신의 주장을 내놓을 수 있는, 몇몇 사람이 계속해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배려하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조율형 "나도 가고 너도 가야지."

'윈(Win)-윈(Win)'. 모든 거래나 전략전술, 협상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간단히 말해 이번에 내가 최선을 택하고 네가 차선을 택했다면, 다음엔 내가 차선을 택하고 네가 최선을 택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영천이 지역구인 정희수 의원실은 권형석 보좌관이 나서서 보좌진 6명의 휴가 일정을 잡는다. 주로 정 의원이 해외로 나가거나 휴가를 갈 때를 맞춘다. 그때도 의원실을 비울 수는 없으니 2명씩 나눠서 3, 4일씩 휴가 일정을 잡는다. 권 보좌관은 "서로 조금씩 양보한다는 마음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다 조율이 된다"며 "올해는 자녀가 셋인 나를 다른 비서관과 비서들이 배려해 줘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공무원 장수영(34) 씨 역시 팀장의 배려로 이번 여름 휴가 일정을 아내가 원하는 날짜에 잡을 수 있었다. 장 씨의 팀장은 팀원들이 원하는 휴가 일정을 일괄적으로 받아서 달력에 표시한 뒤, 며칠씩 조정하면서 최대한 팀원들이 원하는 날짜를 맞춰주는 배려를 했다. 장 씨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휴가를 정하는 팀장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좋아했다.

조율형은 민주적 소통 방식의 휴가 정하기로, 조직 구성원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통이 잘 되는 조직일수록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희생형 "난 괜찮으니 당신 먼저"

'Selfish(이기적)한 DNA가 아니라 Altruistic(이타적) DNA'. 이런 유형이 많으면 법과 규제가 필요 없을 것이다. 모든 행동의 코드 자체가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형편을 먼저 들여다보고 헤아려주니 갈등할 일도 없다. 오히려 배려받는 당사자가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홍경용(54) 회비홍보과장은 일단 지사 내 각 부서별 조율을 통해 전체 휴가 일정을 잡은 뒤 부서 내 직원들 위주로 계획에 맞춰 휴가를 갈 수 있도록 챙겨준다. 자신은 맨 나중에 휴가를 정하는 스타일. 젊은 직원일수록 휴가에 대한 기대감이 크고 미리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더 배려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 과장은 "휴가 때문에 직원들과 마찰을 빚어 본 적이 한번도 없다"며 "서로 배려하는 마음 속에서 좋은 직장 문화가 싹튼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 봉산문화회관 양수용(51) 관장도 이 유형에 속한다. 먼저 자신의 휴가를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초여름이나 늦여름으로 정한 다음 직원들을 모아놓고 휴가 일정을 잡는다. 가능하면 원하는 기간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며 딱히 부딪히는 경우가 생기면 고참 직원이 차선책을 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양 관장은 그러면서도 "성수기를 피해 가면 시간 절약, 돈 절약, 사색(思索) 등 1석3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뿐더러 휴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고 희생형이 누릴 수 있는 숨은 혜택을 역설했다.

부서나 팀내에 장(長)이 희생형이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팀원 중 한두 명만 이 유형이라도 전체 휴가 일정 잡기는 한결 수월하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희생과 배려는 언제나 마음을 훈훈하게 하듯 모든 조직에 희생형이 갈수록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