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목의 한국보기] 국경을 초월한 월드컵 응원

입력 2010-07-03 07:49:13

저는 무탈리푸 케레무(木塔力甫克熱木)라고 합니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왔습니다. 한국에 온 지 5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인의 애국심 때문에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북경올림픽, 밴쿠버 올림픽 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더욱 놀람을 줬습니다. 붉은악마 덕분에 저한테 평생 잊지 못할 월드컵을 남겨줬습니다.

저는 축구를 많이 좋아합니다. 월드컵을 항상 축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월드컵 중계를 보기 시작한 것은 1998년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였습니다. 특별히 응원하는 축구팀이 없이 집에서 혼자 중계를 봤습니다. 일본 유학 중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조용히 일본에서 중계를 보며 응원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한국에 있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대한민국을 응원했습니다. 거리응원은 생각조차 안 해 봤습니다.

드디어 남아공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이번엔 더 이상 집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조별 예선 첫 경기 그리스전 때 대구 시내에 나갔습니다. 경기 몇 시간 전부터 동성로는 벌써 붉은 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의 첫 골이 터지자 동성로는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경기 흐름에 따라 긴장하고 소리를 지르고 환호를 했습니다.

박지성의 멋진 골이 터지자 축제는 절정으로 들어갔습니다. 경기가 끝났지만 동성로 축제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자세히 보면 승리를 즐기는 사람은 한국인뿐만 아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외국인도 같이 즐기고 있었습니다. 월드컵 응원은 국경을 초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경기 때는 우리 학교 외국인 학생들이랑 학교에서 붉은 옷을 입고 응원했습니다. "대~한~민~국 짝 짝~짝 짝~짝." 우리는 한국인의 강한 애국심에 감염돼 열심히 응원한 것 같습니다.

조별예선 세 번째 경기, 이번엔 응원하기 제일 힘든 새벽이었습니다. 하지만 16강 진출의 희망은 우리를 다시 한곳에 모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응원을 했고 16강 진출이 결정되는 순간, 서로 껴안고 같이 기뻐했습니다.

사상 첫 원정 16강전 역시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경기 시작하기 3시간 전부터 친구들이랑 학교 앞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한국인들은 붉은 셔츠를 입고 있고 자기 나라를 응원하는 외국인을 보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경기 동안 국경을 초월해 단지 열심히 대한민국을 응원할 뿐이었습니다. 실점에 대한 아쉬움과 득점에 대한 기쁨, 그때 한국인과 외국인은 더 이상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경기는 졌지만 태극전사들이 잘 싸웠다는 것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인정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몇 분 동안 조용했지만 우리는 다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대~한~민~국!" 우리 모두는 잘 싸웠던 태극전사들에게 위로를 보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월드컵을 즐겨 봤지만 이번 월드컵만큼의 추억은 없었습니다.

한국인의 애국심은 국경을 넘어 한국에 있는 저 같은 외국인한테도 아주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월드컵을 진짜 축제로 만들어 준 태극전사들 그리고 열심히 응원한 한국에 감사합니다.

태극전사들은 우리한테 희망을 보여 줬고 4년 후에는 우리들에게 더욱 감동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음 월드컵은 제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꼭 대한민국을 응원할 것입니다.

무탈리푸 케레무'영남대 석사과정

무탈리푸 케레무(木塔力甫克熱木'28) 씨는 중국 위구르족 출신으로 한국에서는 '아목'이란 애칭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 영남대 경영학과 석사과정에서 마케팅 전공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무탈리푸 씨는 4주에 한 번씩 본란에 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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