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門서 華岳까지] (27)장륙산(將六山) 장륙능선

입력 2010-07-02 07:19:48

신라 장수 6명이 수련하던 육장굴 '장군=신선' 무속신앙 기도처

장륙산 상징 같이 돼 있는 육장굴. 안이 넓을 뿐 아니라 천장이 매우 높고 벼랑바위 통문까지 갖췄다. 전망 또한 매우 뛰어난 명소다.
장륙산 상징 같이 돼 있는 육장굴. 안이 넓을 뿐 아니라 천장이 매우 높고 벼랑바위 통문까지 갖췄다. 전망 또한 매우 뛰어난 명소다.

비슬기맥을 살피러 나서는 길에 먼저 해 둘 일은 아무래도 '장륙능선'을 살피는 것일 터이다. 출발점인 사룡산서 바로 갈라져 나가는, 기맥 첫 가지산줄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 4회 차에서 본 대로, 장륙능선은 사룡산(686m)을 출발해 동창천 가 같은 높이의 장륙산(686m)까지 12km나 이어달리며 청도(운문면)와 경주(산내면)를 가른다. 최저점조차 해발 400m에 가까울 만큼 위세가 대단하고, 주행을 끝내는 순간까지 대체로 600m대를 지켜나가는 것도 특징이다.

이 능선 서편 운문면엔 괴틀-신당-평지말 등 마일리 자연마을과 봉하리 오동(봉산)마을 등이 골 상류로부터 차례로 자리 잡았다. 더 하류 지점에선 지촌리 용귀마을이 아예 산줄기 위로 올라 앉아 있기도 하다. 반면 동편 산내면에는 시루미기-중리-지경-수피 등 우라리 마을들과 윗산저-아랫산저 등 내칠리 마을이 순차로 분포했다.

장륙능선 출발 구간의 사룡산 등성이는 너무도 평평해 산줄기 흐름을 가늠하기 힘들다. 겨우 방향을 잡아 길을 나서도 3분여 만에 산상(山上)농장에 가로막혀 또 당황스럽다. 산짐승 방지용 철망 담장이 빙 둘러처져 산길이 더 모호해져버린 것이다.

동편 시루미기 마을서 경작하는 듯한 그 농장 울타리를 잘 감아 돌면 도합 30여분 만에 554m재로 내려선다. 괴틀과 중리를 잇는 옛길이다. 괴틀서는 그걸 '우라촌고개'라 불렀다. '문방골'을 걸어 오르고 이 재를 넘어 경주 아화장에 다녔다는 것이다.

그 재 이후 산줄기는 100여m 되솟아 오른 뒤 1km에 걸쳐 600m대 높이를 유지한다. 하지만 얼마 후 솟은 만큼 추락하고 또 130m 추가 하락해 해발 398m재로 내려앉는다. 장륙능선을 두 동강 내다시피 하는 최저점 잘록이다.

청도 신당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옛날 마일리 쪽 어른들은 이 재를 통해 산 너머 산내장을 봤고, 어린이들은 수피마을에 있던 경주의 '우라국민학교'(폐교)를 다녔다. 어머니 할머니들은 그쪽 나물을 뜯어 와 영천장에 내다 팔아 생계에 보탰으니, 가족을 위해 무려 3개 시·군을 오갔던 노고가 눈물겹다.

이 재를 두고 국가기본도는 '비지오재'라 기록하고 향토지 중에는 '비조'(飛鳥)라는 보다 유식해 보이는 한자 풀이를 해 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어느 마을 할 것 없이 '비지재' '비지고개'라 불렀다. 신당 마을 동편 저수지 안길이 그 통로이며, 그리로 오르는 골 또한 '비지골'이라는 것이다. '비지고개'라 하던 게 경상도 식 '비지고오'로 변음됐다가 '비지고' '비지오'가 된 것을 '비조'로 더 축약해 한자말인 줄 알고 역번역한 것 아닐까 싶다.

비지재에서 다음 봉우리로 오르는 구간은 조건이 매우 나쁘다. 길이 매우 희미해 놓치기 일쑤고 그 탓에 밀림 같은 덤불 속을 헤매게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구간만 돌파하면 큰 오르내림 없는 500m대 능선이 4km 가까이 이어진다.

그 십리 능선 중 비지재서 올라 처음 도달하는 561m봉서는 동편으로 특이한 지릉이 하나 갈라져 나간다. 거기 사룡산·장륙산보다 더 높은 698m봉 등의 고봉이 솟았다. 같은 위세를 최장 3km나 이어 가면서 그 속으로 4km나 되는 긴 '산저골'을 품어 들인다. 진입부는 좁으나 막다른 지점에서 넓은 들판처럼 열리는 특이한 골이다. 그 끝에 별세계 '윗산저' 마을이 자리 잡았다.

십리능선은 561m 분기봉 이후 20여분 만에 잠깐 고개를 숙여 505m 짜리 잘록이를 하나 내 준다. 서편의 오동(봉산)마을과 동편의 윗산저마을을 잇는 고개다.

그런 다음 능선은 다시 본래 높이를 회복하며, 그 첫 봉우리인 또다른 561m봉에서 이번엔 서편으로 앞의 것보다 더 긴 4km짜리 지릉이 갈라져 나간다. 그 몸체의 해발 450여m 높이에 '용귀'라는 고산 마을을 들어앉히고 장륙능선 본선과의 사이에 10리 가까운 '침시골'을 형성하는 매우 볼만한 가지산줄기다.

침시골은 장륙능선 최하단 지촌리에 속하는 골로, 장륙산 가는 농로 겸 임도도 그 속으로 개설돼 있다. 청도서 접근할 경우 운문호 끝 지점인 지촌리 동경마을을 지난 뒤 경주 산내면과의 경계 교량을 통과하는 즉시 U자로 급좌회전하면 된다. 그러면 장륙산 산덩이 아래 하천을 따라 역방향으로 진입하게 되며, 길은 곧 다시 직각 우회전해 북동 방향의 침시골을 오른다.

그렇게 올라가는 도중의 침시골은 좁긴 해도 그 안에 논밭이 있고 표고버섯 하우스도 여럿 섰다. 또 봄철이면 나물 뜯고 약초 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외지인들이 그 깊은 산속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신통하기 그지없다.

침시골 산길은 골 끝에서 둘로 나뉘는 바, 좌회전하는 길을 타고 오르면 마루금에 걸쳐 형성된 용귀마을에 도달된다. 반면 직진하는 길을 타면 얼마 후 우회전하면서 목전의 장륙능선 본선 아래를 감아 돌다가 결국 능선 등허리 위로 올라선다. 길 좌우 해발 500여m 등성이에 여기저기 고산 농장들이 펼쳐져 있는 구간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등산객용 넓은 주차장까지 갖춰져 있다.

앞서 본 오동~윗산저 사이 505m재에서 산줄기를 걸어 주차장 지점에 이르는 데는 25분가량 걸린다. 505m재 남북에 반반씩 걸쳐 해발 500m대의 십리 능선이 형성돼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주차장 지점서는 7분 정도 만에 장륙산 바로 밑 잘록이에 닿는다. 해발 492m의 '침시골재'다. 그걸 동서로 가로질러 지촌리 침시골과 내칠리 아랫산저마을이 이어진다.

장륙산 정상은 이 '침시골재'에서 걸어 30분미만 거리에 있다. 하지만 도중 15분 정도면 마애불 진입점인 널찍한 마당바위에 먼저 닿는다. 거기서 산허리로 옆걸음질 해 2분 만에 도달되는 마애불은 서향 암벽에 선으로 새긴 높이 154cm 불상 그림이다. 장륙산 3대 명소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등산객에게 마애불보다 더 솔깃한 것은 그 앞의 시원한 조망대다. 거기서는 사룡산서 구룡산 거쳐 바리박산(발백산)으로 이어가는 비슬기맥 산줄기가 훤하다. 서북방향으로 멀리 구룡산 정상부 구룡마을(청도)과 수암마을이 선명하다. 가까이로는 산상의 용귀마을 또한 전모를 내 보인다.

그렇지만 마애불서 남서쪽으로 몇 분 간 오르면 더 뛰어난 조망대도 만난다. 장륙산 또 다른 명소인 '육장굴' 위 절벽 덤이다.

흔히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육장굴 접근로는 이 경로가 아니라 아까 본 침시골재를 거쳐 계속 이어가는 임도다. 임도는 장륙산 정상부를 반 바퀴 휘감아 돈 뒤 장륙능선 남단부를 향해 내려간다. 그 하강 시점에 초막이 있으며, 진입로는 그 바로 아래서 시작돼 2명의 장군상이 새겨진 암괴군을 지나고 바위문을 통과해 육장굴로 들어간다.

육장굴은 신라시대 장수 6명이 수련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명소다. 굴 천정이 유달리 높고 들어가는 암괴 통문이 별도로 있는 게 특징이다. 절벽 위에서 남서향으로 열려 있어 전망 또한 특출하다. 굴 넓이는 10여 평이라고 소개돼 있다.

인접 마애불과 이 육장굴 일대가 유례 귀할 대단한 기도처임은 금방 알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기도막들이 여기저기 숱하게 포진했기 때문이다. '장군'을 산신과 동일시해 그 힘을 빌려 어려움을 이겨나가고자 하는 우리 전래신앙이 빚어낸 현상일 터이다. 그래서인지 장륙산은 '장군산'이라 불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 '장구산'이라 지칭되기도 했다.

장륙산에서는 무속인 뿐 아니라 일반 민초들도 오랜 세월 가물 때 '무지'를 올려 왔다고 했다. '무지'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으나, 기우제와 비슷한 '무제'라는 의례가 있고 거기서 변음된 게 '무지' 아닐까 추측됐다. 무지를 지내던 장소는 '무지터'라 불리며, 장륙산뿐 아니라 구룡산·비슬산에서도 볼 수 있다.

장륙산 무지터는 산 정상의 북편에 해당할 마애불과 그 남서편 육장굴 위 전망대 사이, 그리고 정상의 북동편에 매우 평평하고 넓게 형성된 곳이다. 지금도 나무만 베어내면 밭이 될 듯싶을 정도이다. 이 산이 신라 화랑의 군사 훈련장이었다는 이야기도 그런 바탕 위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무지터 모습과 달리 장육산 정상부는 뾰족하다. 덕분에 남서편으로는 가지산·운문산·억산·팔항덤·구만산이 한눈에 꿰인다. 오직 아쉬운 것은 넙적한 암반 위에 세워진 '장육산 680m, 울산어울림산악회'라는 정상석이다. 높이가 그보다 6m 더 높다는데 어쩌다 저런 이상한 자료를 구해다 낯선 땅에 새겨 놓은 것일까.

장륙능선 전체는 12km쯤 되지만 사룡산서 장륙산 정상까지는 8.8km 정도다. 보통 산걸음으로 4시간 정도 걸릴 거리다. 그러나 이 구간은 3시간 정도면 주파할 수 있다. 능선 흐름이 완만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종주는 아무나 도전하기엔 위험해 보인다. 산길은 희미하고 시야는 꽉꽉 막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불가능한데 산줄기는 군데군데서 직각으로 굽어 가 버리기 때문이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