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내려 계단만 오르면 '천지'가 눈앞
"중국의 4대 절경으로 북경, 계림, 서안, 백두산이 꼽힙니다. 절경을 구경하는 대가로 다리, 눈, 귀, 엉덩이가 아파야 하는데요. 북경은 많이 돌아다녀야 해서 다리가 아프고요. 계림은 볼거리가 많아서 눈이 아픕니다. 역사에 대해 많이 들어야 하는 서안은 귀가 아프고요. 그럼 백두산은 뭘까요? 엉덩이입니다. 버스로 이동하는 거리가 워낙 많아서지요."
정말 그랬다. 백두산에 오르겠다며 챙겨온 등산복은 백두산을 찾은 이들의 국적을 구분짓는 옷일 뿐이었다. 등산복 차림이면 한국인, 옷을 껴입고 오거나 심지어 정장 차림이라면 중국인이었다. 6월 초순 찾은 백두산은 아직 겨울이었고, 발품을 팔 일이 없었다. 등산화가 민망해질 정도로 셔틀버스와 지프는 부지런히 짝퉁 등반객들을 실어날랐다.
'이렇게 편하게 백두산에 오르다니.' 중국의 창바이산(長白山)은 천지 앞까지 도로를 내놓았다. 260위안(한화 4만원 가량)만 내면 누구라도 예외없이 실어줬다. 정장을 입은 중국인들이 많은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걸어서 올라가는 이들이 없는 이유도 이해됐다.
▶엉덩이가 아픈 백두산 관광
백두산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별하는 방법 중 적중률이 높은 게 눈빛이었다. 백두산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난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중국인들은 화산으로 생성된 산의 절경에 입을 벌리지만, 한국인들은 백두산에 대한 존경심에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을 거치지 않고 중국 영토를 거쳐 백두산이 아닌 창바이산을 올라야 하는 현실에 한숨 쉬는 이들은 백이면 백 한국인이라 여기면 틀림없다.
천지까지 가는 동안은 발품을 팔 일이 없었다. 온전히 차량으로만 이동할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인지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 연로하다 싶은 노인들도 간간이 보였다.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가이드의 설명을 듣거나 바깥 경치를 감상하는 게 전부였다. 둥그런 방패를 뒤집어놓은 것처럼 생긴 화산이었기에 시속 70㎞ 이상으로 달리는데도 경치는 한참을 이어졌다.
불함산, 개마대산, 태백산 등이 백두산의 또 다른 이름들이라는 설명이 들렸다. 영어로 화산을 일컫는 볼케이노(Volcano), 몽고와 투르크의 신 부르칸(Vurkan), 한민족의 뿌리와 닿아있는 불함(不咸)이 비슷한 발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계단만 오르면 되는 서파 코스
"서파 코스는 계단만 오르면 됩니다."
버스에서 내려 계단만 오르면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중국은 친절하게도(?) 창바이산에 돌계단을 깔아놓았다. 서파는 누구나 오를 수 있을 만큼 완만한 고산지대. 중국은 1995년부터 이곳을 개발해 적잖은 관광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 하는 이들을 향해 가마꾼들이 계속 외쳐댔다. "레이러 쭤어즈.(힘들면 앉아 가)" 한국 돈으로 4천원을 내보이는 게 한국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듯했다. 계단이 1천236개(900m 거리)인데다 산소가 부족해 헐떡이는 이들도 간혹 있어서였다. 3분의1 정도 오르자 더 이상 호객꾼은 없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날씨가 화창해 걱정하지 않았지만 가이드는 연방 "올라가봐야 안다"며 겁을 줬다. 백두산 정상의 날씨는 올라가 있는 동안에도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힘이 들어 "끙~" 소리를 낼 정도가 되자 "여기가 천지입니다"라는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북한 영토가 지척이었다. 아니 '경계'라고 쓰인 비석만 넘으면 북한 영토였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듯 비석이 반질거렸다. 장난삼아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넘나들긴 했지만 민족의 영산이 중국의 국익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등산복조차 필요 없는 북파 코스
백두산 등정은 서파와 북파 코스가 널리 알려져 있다. 서파 코스로 다녀온 이튿날 북파 코스로 다시 천지에 올랐다. 북파 코스는 지프로 천문봉 능선을 따라 천지 앞 50m까지 올라간다. 산길에 가능할까 싶은 속도로 달렸다. 시속 50㎞는 족히 될 것 같았다. 지프의 손잡이는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얼마나 빠르게 달렸으면 승객들이 손잡이를 뜯었을까. "천천히 가 달라"고 말해도 못 들은 척한다. 어쩔 수 없이 15분가량을 지프에 몸을 맡기니 내려서 5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거리에 천지가 있었다.
백두산 천지 일대는 안개 일수가 연 평균 267일이라 운이 따라야 천지를 볼 수 있다. '백(百)번 올라가면 두(二)번 정도 볼 수 있다'는 농담 섞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내려오는 길에 장백폭포를 볼 수 있으며 온천물에 삶은 계란도 맛볼 수 있다.
▶백두산 가는 길
대구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방법은 대구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중국 랴오닝성 선양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선양까지 2시간 이동 후 중국 국내선을 이용, 길림성 연길행을 택한다. 물론 버스로도 이동할 수 있지만 800㎞에 이르는 길이기에 단단히 각오하고 나서야 한다. 연길에서 백두산까지 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연길~용정~화룡~이도백화~백두산 코스는 종전에 8시간씩 걸렸다. 그나마 지난해 국도가 확장돼 3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