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할부 이별

입력 2010-06-30 07:24:41

생을 마감할 때도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간 멀쩡하다가 질병 판정을 받고 한두 달 안에 서둘러 떠나는 바람에 가족들을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사람도 있고, 수년 간 시름시름 앓다가 길고 가늘게 여운을 남기며 이별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 달에 한 번씩은 가족들을 불러들여 열두 번 이상 심장을 떨어지게 하다가 작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모습이든 사별은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다. 그것은 앓는 기간에 상관없이 충격과 고통을 준다. 특히 배우자의 상실은 스트레스 중에서도 가장 수치가 높다고 한다. 그래서 병 수발로 고생이 되더라도 조금이라도 오래 있다가 떠나갔으면 하는 것이 일반적인 가족들의 바람이다.

내가 잘 아는 지인은 남편을 보낸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냥 출장 갔으려니 생각하며 산다고 한다. 평소 건강했던 그녀의 남편은 규칙적인 운동으로 축구를 했고, 정기검진도 매년 받았다. 발병나기 두 달 전에도 종합검사를 한 상태였고 아무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겨울 유난히도 심하게 감기를 앓았고 옆구리가 자꾸 아파오더라는 것이다. 이상하다싶어 정밀검사를 하니 췌장암이라는 진단이 났다. 워낙 건강했던 터라 4주 동안 밥도 잘 먹고 약물로 하는 항암치료도 거뜬히 이겨 냈는데 어찌된 일인지 5주차에 혈관이 갑자기 터져버렸다. 중환자실에서 3주 동안 머물러 있다가 가족들과 이별을 했다. 발병 후 두 달 만에 떠난 셈이다.

평소 그는 성격이 워낙 깔끔해 주변 정리가 완벽했고 모든 살림을 도맡아 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가 명확했고 사리판단이 분명했다. 아내나 자식을 위하는 마음 또한 부족함이 없었으니 가족들이 겪어야할 빈자리는 불을 보듯 뻔했다. 완벽한 성격처럼 떠날 때도 최대한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듯 서둘러 갔다며 말끝마다 지인은 눈물을 찍어댔다.

나도 제법 성격이 급하고 완벽주의자다. 아직까지 할부로 물건을 사본 적이 없다. 주변이 어지러우면 밤을 새워서라도 치워야 하는 성격이고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의사를 밝히는 편이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평소 성격이 죽음과도 관련이 깊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든다.

이별은 너무 성급하게 일시불로 하지 않아도 될 성 싶다. 삶에 있어서 할부 인생은 힘들겠지만 죽음의 할부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기간만큼 서로를 위해 마지막 남은 사랑의 할부금을 당겨 갚는 시간이 될 테니까.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은 누구에게나 한번은 온다. 할부 이별을 위해 평소에 느긋해지는 마음부터 배워야겠다.

주인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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