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피살' 부실수사 닮은꼴 또 있다

입력 2010-06-29 10:44:56

12년 전 딸 잃은 아버지 경찰 허술대처 분노

1998년 의문의 죽음으로 고인이 된 딸을 가슴에 묻은 정현조(64) 씨. 숨진 딸의 사진을 보던 그는
1998년 의문의 죽음으로 고인이 된 딸을 가슴에 묻은 정현조(64) 씨. 숨진 딸의 사진을 보던 그는 "경찰의 수사를 보니 그때와 비슷해 기가 막힌다"며 분개했다.

24일 실종 이틀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여대생 L 씨 납치·살해 사건'을 계기로 12년 전 숨진 '여대생 정은희'(당시 19세) 양의 사인(死因)에 얽힌 미스터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정 양의 유족들이 개설한 인터넷 추모 홈페이지에는 정 양의 사인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이 불붙고 있고, 유족들은 당시 경찰의 안일한 대처가 이번 여대생 납치·살해사건의 부실 수사와 꼭 닮았다며 분개했다.

정 양의 아버지 정현조(64) 씨는 28일 "우리 딸, 은희 사건도 경찰의 초동 수사가 문제였다"며 "그때 조금 더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10년 넘게 이러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경찰이 사고 당시 초동 대처만 제대로 했어도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는 것. 정 씨는 "이번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을 보면서 경찰의 부실 수사에 한숨만 나온다"며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12년 전 기억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1998년 10월 17일 새벽. 학교 축제기간 중 술에 취한 동료를 바래다 주러 나갔던 딸은 이날 오전 5시 10분쯤 구마고속도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학교에 간 지 7시간 만이었다.

경찰은 정 양이 구마고속도로 하행선 7.7km 지점을 무단횡단하다가 C(당시 52세) 씨가 몰던 23t 덤프트럭에 치어 숨졌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유족들은 경찰수사에 동의할 수 없었다. 발견 당시 속옷없이 겉옷만 입고 있었던 점, 사라진 속옷이 사고 장소로부터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는 점 등 숨진 이유가 교통사고 때문만이라고 볼 수 없다며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정 양의 속옷이 없었던 것은 시신을 영안실로 옮긴 뒤 영안실 직원들이 사체를 추스르면서 벗긴 것이며, 유족들이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주장하는 속옷은 너무 낡아 사고 직전 정양이 입었던 것으로 볼 수 없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하지 않았다. 경찰은 결국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 지은 것.

유족들은 이후 재수사를 촉구하며 사정 기관에 여러 차례 진정서를 냈다. 유족들의 끈질긴 요구 끝에 경찰은 사고가 일어난 지 5개월 후에야 속옷에 대한 감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유족들은 이후 경찰이 직무를 유기했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기각됐다.

정 씨는 "8년간 아무리 진정서를 내고 이야기해도 경찰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이젠 할 말도 없고 지칠 대로 지쳤다"며 "(수사를)안 하려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안 되는 쪽으로 가더라"며 울분을 삼켰다.

정 씨가 이번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을 보며 가슴이 더 쓰라렸던 것은 12년 전 경찰과 지금의 경찰 수사태도가 꼭 닮았다는 점 때문. 정 씨는 "눈 앞에서 범인을 놓쳐 놓고 남의 집 귀한 딸을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목청을 높였다.

유족들이 2006년 개설한 정 양의 추모 홈페이지(http://www.ibuksori.com)에는 네티즌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이후 160여 명이 이곳을 찾아 경찰 재수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을 남겼다.

정 씨 유족들은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의 유족에게 같은 일을 겪은 사람으로 직접 찾아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며 "겪어본 사람만이 그 '찢어지는' 아픔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1998년 정 양 사건을 담당했던 달서경찰서 형사들은 대부분 은퇴한데다 교통사고 사망사건으로 종결돼 정 양 사건을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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