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행복, 그리고 상대적 우월감

입력 2010-06-29 08:04:20

"공부는 왜 합니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새벽 밥 먹고(혹은 밥상은 구경도 못하고) 0교시부터 얼추 12시간을 학교에서 보낸 아이들에게 조금은 가혹한 질문이었을까? 빈말이라도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야 할 판에, 시비 거는 것도 아니고 굳이 '왜'라는 단어에 강세까지 줘가면서 물음을 던졌으니 황당할 법도 하다.

그런데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다. 왜 이 늦은 시간까지 여기에 앉아있는 것일까?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담겨있을까? 그래서 다소 시비조로 말문을 열었다. 도대체 왜 여기에 앉아있는 거냐고?

주고받은 이야기를 짧게 옮겨본다. '왜 공부하지?-좋은 대학 가려고-거기 가서 뭐 할 건데?-좋은 직장 구하려고-그래서?-돈도 많이 벌고 좋잖아-돈 벌면?-행복해지지.' 아! 그렇구나. 아이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렇게 앉아있는 것이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어서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진다고 믿는 아이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심히 공부해라. 그러면 행복해지리라'. 아마도 현 정부에서 추구하는 교육정책의 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럴 것이다.

그런데 뭔가 개운찮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갑갑해졌다. 이건 사기다. 사기꾼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 가리고 아웅하기'도 도를 넘어섰다. 다시 정리하자. 앞서 정의에서 중간에 생략된 것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라. 그리고 경쟁에서 이겨라.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행복의 길은 단순치 않다. 그저 '열심히'가 아니라 '남보다 더 열심히'가 돼야 하고, 그저 '좋은 대학'이 아니라 '남들이 가는 곳보다 더 좋은 대학'이 돼야 한다. 나름대로 아무리 코피 터지도록 열심히 해봐야 '남보다 더'가 아니면 소용없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정체는 '상대적 우월감'이었다.

부모라고 다를까? 상대적 우월감과 행복을 구분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자녀들에게 똑같은 과오의 전철을 강요하고 있다. 세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금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10년 또는 20년 뒤가 되면 어떤 세상으로 바뀌어 있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직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부모들은 모른다. 그런 직업이 존재하는지도.

지금도 부모들이 생각하는 직업은 '공무원, 의사, 변호사, 판'검사, 대기업 회사원' 등등 뻔한 직업에 국한돼 있다. TV 다큐멘터리에서 색다른 직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참 별난 사람도 다 있네'라고 생각할 뿐, 정작 자신의 자녀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한다. 자신들이 그런 꿈을 꿔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 '상대적 열등감'의 포로가 된 기성세대는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이 우리 아이들을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있다. 행여 오해하지 마시라. '열심히'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에 대해 침을 뱉고 싶은 것이다. '경쟁만이 살 길'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긴장과 스트레스는 극도로 치닫고 있다. 너무나 팽팽해져서 언제 툭 하고 끊어질지 불안할 정도다. 지금이라도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너는 왜 공부하느냐?"고.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기성세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걸지도 모른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냐?'고.

김수용 사회1부 차장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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