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코리아, 내 청춘에 보답"…아치 클락씨

입력 2010-06-25 11:10:28

60년만에 戰場 방문, 90세 미국老兵 아치 클락씨 동료·가족과 대구에

6·25전쟁 참전용사인 미국인 아치 클락(왼쪽에서 세 번째) 씨와 가족들. 왼쪽부터 외손녀 스테파니 오트와 부인 캐롤 클락, 딸 무어 오트 씨.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6·25전쟁 참전용사인 미국인 아치 클락(왼쪽에서 세 번째) 씨와 가족들. 왼쪽부터 외손녀 스테파니 오트와 부인 캐롤 클락, 딸 무어 오트 씨.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국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6·25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아치 클락(79·Archie S. Clark) 씨는 60여년 만에 찾은 한국의 발전상에 감격스러워했다. 지역 한 교회의 후원으로 당시 동료 참전용사 54명과 함께 한국을 찾은 클락 씨는 24일 육군 제2작전사령부(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들렀다. 참전용사 가족 45명을 포함한 일행 100명은 30℃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도 트럭 위에 올라 사령부 내 환영 행사장까지 이동하면서 장병들을 향해 연방 손을 흔들어댔다.

이날 붉은 스카프를 목에 두른 클락 씨와 참전용사들의 발걸음은 느렸다. 목숨을 걸고 전장을 내달리던 용사들도 전쟁 중 얻은 갖가지 부상과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했던 것.

올해 아흔 살이 된 엘리스 엘런(Ellis Allen) 씨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군악대와 의장대의 시범 공연, 특공무술 시범 등을 지켜보며 힘찬 박수를 보내며 감격해했다.

참전용사들 가운데 클락 씨가 눈길을 끈 것은 가족 3대가 함께 한국을 찾았기 때문. 1952년 한국 땅에 첫 발을 디뎠던 클락 씨는 이날 부인 캐롤 클락(74) 씨와 딸, 외손녀 스테파니 오트(23·Stephanie Ott) 씨와 동행했다.

클락 씨 역시 전쟁의 포화속에서 온전치 못했다. 전쟁 당시 부상으로 오른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탓에 보청기를 껴야만 한다. 옆 사람의 말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아 부인이 왼쪽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다시 설명을 해줘야 했다.

클락 씨는 전쟁 당시 기억을 되살리면서 몸서리를 쳤다. 그는 "내가 참전할 당시 이미 수많은 아군이 죽어나갔다"며 "나 역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순간이 수없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 남았고 60여년이 지나 전우들이 쓰러져간 땅을 다시 찾은 것. 클락 씨는 "내 청춘과 목숨을 바쳐 싸웠던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만큼 발전한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클락 씨의 열정은 한 세대를 걸러 외손녀 오트 씨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날 클락 씨 곁을 떠나지 않았던 오트 씨는 미국 평화봉사단에 소속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1년 6개월째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외할아버지가 낯선 땅에서 총을 들고 평화를 위해 싸웠다면 외손녀는 책을 통해 평화를 전파하고 있는 셈. 오트 씨는 "내가 이런 결심을 한 것도 외할아버지의 영향"이라고 전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곳인데 고려인들을 바라보는 오트 씨의 시선도 남달랐다. 그는 "외할아버지가 한때 목숨 바쳐 싸웠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그들을 볼 때마다 괜히 정이 간다"며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지만 한국 역시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클락 씨와 일행은 25일 서울에서 열리는 6·25전쟁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27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참전용사들은 빠듯한 일정에 힘겨워하면서도 청춘의 한 자락을 보낸 한국을 잊지 못했고, 잊지 않겠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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