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수사 곳곳에 허점

입력 2010-06-25 11:24:33

경찰, 피해자 태운 차량 보고도 도주 못막아

경찰이 납치 여대생 사건에 대한 수사에서 초기 대응만 잘했더라면 피해자가 숨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경찰 수사에 큰 허점을 드러냈다.

경찰은 여대생 L씨 납치'살해 용의자 K씨를 거의 잡을 뻔했다 놓치는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고 통합수사본부 구성도 늦잡쳐 사건을 키웠다.

대구 성서경찰서는 24일 오후 용의자 K씨를 검거했지만 이미 L씨는 숨진 상태였다.

K씨는 23일 오전 7시 50분쯤부터 "딸을 데리고 있으니 현금 6천만원을 딸 통장 계좌로 입금하라"는 전화를 L씨 가족에게 걸었다. L씨 가족은 "당장 가진 돈이 없다"고 말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편의점 현금인출기 폐쇄회로 화면 등을 통해 K씨의 인상착의와 범행 차량을 확인, 검거에 나섰다. 가족들은 시간을 최대한 끌었고, 이날 오후 6시 30분쯤 L씨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터였다.

이후 경찰은 납치된 L씨의 마지막 전화가 걸려온 지 30분 남짓 지난 오후 7시쯤 대구 달서구 신당동 지역난방공사 인근 도로에서 용의자의 차량을 발견했다. 그러나 차량 확인을 위해 접근하던 중 K씨의 차량이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L씨는 살아있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경찰의 추격 사실을 알게 된 K씨가 L씨를 살해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이에 대해 "K씨는 처음부터 L씨와 알고 있던 사이였기 때문에 범행 직후 L씨를 살해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L씨의 유족들도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들은 "범인에게 돈을 입금해주려 하자 경찰이 지급정지를 먼저 요구했다. 돈을 송금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항의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부정계좌로 등록되면 계좌 추적에 용이하다는 점이 있어 계좌 지급정지, 해제를 반복하는 것이 통상적인 수사 기법"이라고 밝혔다.

뒤늦은 통합수사본부 구성도 문제였다. 여대생 납치 지역은 수성구, 검거 지역은 달서구로 엇갈린데서 보듯 경찰의 공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경찰은 24일부터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수사본부장으로 하고 수성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차릴 예정이었으나 용의 차량이 달서구 지역에서 발견돼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경찰은 "수사본부 구성에 앞서 용의 차량 검거에 전 경찰력을 동원했고, 이제부터 수사본부는 성서경찰서를 중심으로 짜여진다"며 "향후 범행 동기에 대한 보강 수사와 추가 범행 여부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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