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門서 華岳까지] (26) 여름, 운문 떠나 비슬로

입력 2010-06-25 07:15:32

'사룡산∼용각산∼비슬산' 75㎞ 장쾌한 능선에 들어서다

비슬기맥 초입의 운문면 정상리 일대. 구룡산(675m)에서 남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내려서는 지릉 아래 골짜기 풍경이다. 구룡산 정상은 사룡산(686m)과 5㎞가량 떨어져 비슬기맥에 두 번째 솟는 600m급 봉우리다.
비슬기맥 초입의 운문면 정상리 일대. 구룡산(675m)에서 남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내려서는 지릉 아래 골짜기 풍경이다. 구룡산 정상은 사룡산(686m)과 5㎞가량 떨어져 비슬기맥에 두 번째 솟는 600m급 봉우리다.

지난번 동창천변 답사 때 함께했던 '유운문산록' 및 같은 저자의 '오산지'를 번역한 사람은 한문학 박사과정에 있는 청도 모계고 이상동 교사다. 같은 학교 강래업 교사와 함께 자료 지원 및 조언 등으로 이 시리즈 제작을 많이 도와주는 분이다.

청도의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 등을 종합 연구한 논문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강 교사가 먼젓번 기사와 관련해 보완 필요성을 제기했다. 매전면 내리(內里)에서 마을 이름보다 '중남'이란 말이 더 중요한 지명으로 사용되는 건 그 땅이 옛날 '중남면'이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자료들을 다시 찾아보니 일대는 1720년대 이후 '적암면'(赤岩面)이라 불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면리제(面里制) 도입으로 갖게 된 이름이었다. 그러다 1896년에 '중남면'(中南面)으로 바뀌었으며, 1914년에는 매전면의 일부로 포함됐다. 마지막 변화는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인한 것이었다.

'중남'은 100여 년 전 불과 18년간 유지된 면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 또한 묘한 일이다. 이런 역사를 짚지 못했으니, 뭣이든 간단히 넘어가려 하면 사고가 나고 마는 법임을 또다시 깨닫는다.

저렇게 갈짓자 걸음을 하는 사이 연재를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니, 지경재~학대산(895m) 사이 42㎞(바닥거리 기준) 구간의 낙동정맥을 살핀 게 지난겨울 두어 달 사이였다. 봄과 초여름 넉 달여에 걸쳐서는 또 그만한 거리의 운문분맥 능선을 지나왔다. 두 구간 거리는 합계 80여㎞였다.

그러는 사이 겨울과 봄이 가고, 이제 여름이다. 지금부터 초가을까지 집중적으로 걸을 구간은 사룡산~비슬산 사이 '비슬기맥'이다. 75㎞ 정도 되는 이 산줄기의 흐름은 사룡산(686m)~오재(375m)~구룡산(675m)~질매재(410m)~바리박산(675m·발백산)~육동구간~곱돌이재(210m)~갈재(170m)~대왕산(606m)~잉애재(373m)~마암산(756m·선의산)~용각산(기슭·650m)~성현(270m·남성현재)~고리골산(잠칭·673m)~팔조령(380m)~삼성산(668m)~밤티재(535m)~청산(802m)~헐티재(510m)~천왕봉(1,083m, 비슬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비슬기맥 대부분 구간은 몇 개 재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해발 500m 이상의 높이를 유지한다. 다만 특별한 예외가 하나 있으니, 경산 용성면 남부에 해당하는 가척재~곱돌이재~갈재 구간 10여㎞가 그것이다. 최고봉이래야 350여m에 불과하고 최저점은 170m까지 떨어지는 곳이다. 탓에 산줄기가 권역 가름선으로서의 능력을 상실하는 현상이 빚어져 있기도 하다.

비슬기맥의 북쪽 기슭에는 동→서 순으로 북안면(영천)-용성면(경산)-남산면(경산)-남천면(경산)-가창면(달성) 등 5개 면이 분포했다. 그 땅에서는 3개의 지천(支川)이 생겨 금호강으로 합류해 간다. 용성서 시작해 남산-자인(경산) 경계선 역할을 하며 흐르는 '오목천'(烏鶩川)이 첫째다. 다음 물길은 남천면서 발원해 경산 시가지로 흐르는 '남천'(南川)이다. 셋째는 가창면 물을 싣고 대구 중심부를 관통하는 '신천'(新川)이다.

반면 비슬기맥 남쪽에는 청도의 여러 읍면과 경산 일부 땅이 자리 잡았다. 처음 것은 운문면이며 다음은 흔히 '육동지구'로 불리는 경산 6개 마을이다. 비슬기맥 낮은 구간을 넘어 북편의 용성면이 남쪽까지 영역을 확장한 결과다. 육동 다음 분포는 청도 금천면-매전면-청도읍-화양읍-이서면-각북면 순이다. 청도 9개 읍면 중 7개가 이 산줄기에 등대고 있다.

비슬기맥 남쪽 이들 땅의 물은 크게 둘로 모여 흐른다. 서편의 '청도천'(淸道川)과 동편의 '동창천'(東倉川)이다. 두 하천의 유역을 가르는 것은 비슬기맥 중간 즈음에 솟은 '용각산'서 내려서는 '유천지맥'이다. 길이가 무려 22㎞에 달하는 이 산줄기는 최남단 유천까지 내리 달리며 청도를 둘로 좍 갈라놓는다. 서쪽은 '산서'(山西), 동쪽은 '산동'(山東)이라 별칭될 정도다.

여기까지가 비슬기맥 본맥 대강의 모습이다.

이쯤서 잠깐 밝혀둘 바는, 함께 싣는 고저표의 구간 거리가 일정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산줄기가 남북으로 흐르는 구간의 실제거리를 컴퓨터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결과인 듯하다. 특히 경산 육동 구간서 편차가 심하다. 실거리가 4배나 차이 나는 경우까지도 고저표에서는 같은 간격 안에 그려져 있다. 거리 표시를 주의해 가며 판독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제 운문을 떠나 비슬로 옮겨갈 채비가 된 듯하다. 둘은 사룡산서 이어지긴 하나 실제로는 동떨어진 딴 세상이다. 발길을 돌리자니 지난겨울 산에서 만났던 개 두 마리가 눈에 어른거린다.

하나는 어느 산 높은 재에서 만난 지친 개였다. 누군가 차로 실어다 버린 듯 못 먹어 바짝 말라 있었다. 그런데도 다시 주인이 자신을 찾으러 오길 기다리느라 그 재를 맴도는 듯했다. 데려와 살려야겠다 싶어 얼러 봤으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심했다. 극한의 굶주림과 지난겨울 그 혹심했던 추위를 이겨냈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또 다른 개는 가지산 꼭대기 대피소 식구인 누렁이다. 눈썹을 까맣게 그린 모습이 좀 그렇긴 하나, 누가 들어가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밥값으로 주는 돈은 즉각 물어다 제 주인에게 갖다 바치는 순덕이다. 매우 추웠던 어느 날, 눈밭을 뚫고 올라 때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먹는 중이었다. 누군가가 다리를 슬쩍 건드리는 것 같아 살폈으나 아무도 없었다. 조금 뒤에도 또 그랬다. 그제야 자세히 보니 옆에 누렁이가 있었다. 라면을 나눠먹자고 사인을 보내는 것이라 했다. 벌써부터 그 누렁이가 많이 그립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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