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50사단 전사자 유해 발굴…2000년이후 4,165구 찾았지만
"전우들이 모두 귀환할 때까지 우리들은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포성의 충격에 멈춰선 시계, 학도병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빗, 영문 'K'자가 선명한 혁대 버클, 그리고 '조길진' 이름이 선명한 구급약품… 6·25 전사자 유해발굴 30여일 만에 60여년 동안 땅속에 묻혔던 한 맺힌 전우들의 유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포화 속에 헤어진 전우는 앙상한 유골이 돼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경북 의성, 군위지역의 향로봉과 매봉산 일대는 가장 치열한 전쟁터 중 하나였다. 1950년 8월 13일~9월 15일까지 국군 수도, 6, 8사단이 북한군 1, 12, 13사단에 맞서 32일간 격렬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국군 6사단이 북한군 1, 13사단과 싸운 경북 문경 어룡산 617고지 전투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매봉산 고지 주인이 서너 차례 바뀐 적도 있었지, 그땐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먹지도 못하고 싸웠어." 참호 속에서 함께 싸우다 적의 총탄에 숨져간 전우를 남겨두고 후퇴했던 참전용사 이권상(79)씨가 유해 발굴현장을 찾아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육군 50사단은 지난 2000년부터 한국전쟁 당시 경북 일대 전투에서 숨진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진모 육군 50사단장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수습되지 못한 유해가 13만여 명에 이른다"며 "조국을 위한 희생에는 유효기간이 없는 만큼 무한책임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김종성 감식과장은 "유해발굴사업으로 지금까지 총 4천165구를 발굴했지만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56구에 불과하다"며 "낙동강 방어선에 걸쳐진 대구, 경북지역에서 전사한 국군의 수가 약 40~50%를 차지해 매년 이 지역 유해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참전용사, 목격자, 지역주민들의 제보가 전사자를 찾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며 "전사자 후손들은 유해발굴감식단(1577-5625) 및 전국 보건소와 군병원에서 채혈과 유전자 검사 등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글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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