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가명·39·여)씨는 정기적으로 수면제 처방을 받는다. 몇년 전부터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될 수 있으면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잠을 자려고 노력해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많다. 새벽까지 뒤척일 때는 할 수 없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시라도 눈을 붙인다. 김씨의 고통은 이혼을 하면서 시작됐다. 직업도 있고 집안 형편도 넉넉해 경제적인 걱정은 없는데 이혼에 따른 정신적인 부담으로 잠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면장애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가 2001년 5만1천명, 2005년 12만2천명, 2008년 22만8천명 등으로 최근 8년간 4.5배, 연평균 23.8%씩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인의 적정 수면시간은 7, 8시간, 청소년은 8, 9시간,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은 9~12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면은 양과 함께 질도 중요하다. 의학적으로 좋은 수면은 아침에 눈을 뜨고 5분이 경과한 후 맑은 정신이 들고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양적'질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열대야도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여 잠못 드는 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쾌적한 수면을 위해 필요한 것과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는 수면산업 등에 대해 알아봤다.
◆불면증 유형과 원인
수면장애에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자는 과면증,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불면증은 가장 대표적인 수면장애 유형이다. 불면증에는 잠들기 힘든 입면장애, 깊이 잠을 자지 못하고 자주 깨는 수면유지장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조조각성 등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수면유지장애로 전체 불면증 환자 10명 가운데 6명이 이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수면역학센터 홍승철 교수팀과 미국 스탠퍼드대 오하이온 교수팀이 15세 이상 한국인 2천537명을 대상으로 불면증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12%(304명)가 불면증을 앓고 있었으며, 이 중 64%(195명)가 수면유지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 교수는 "불면증이라고 하면 보통 쉽게 잠들지 못하는 증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빈번한 유형은 잠든 후 여러 차례 깨는 수면유지장애"라며 "이를 불면증이라 생각하지 않아 병원 치료를 안 받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불면증 원인은 다양하다. 불안·스트레스·우울증 등 심리적 요인과 불규칙한 생활습관, 주·야간 교대근무에 다른 생체리듬 교란 등이 불면증을 유발한다. 또 폐쇄성 수면무호흡증'하지불안증후군 등 다른 수면장애가 불면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호흡기질환과 심장질환, 신경과질환이 있을 경우에도 불면증이 나타날 수 있다.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은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개인화도 점점 가속화돼 고민을 혼자 떠안고 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불면증 환자가 늘고 있다. 또 해만 지면 인간의 활동이 중단됐던 농경문화와 달리 도시가 발달하면서 밤 문화와 밤 활동이 증가한 것도 불면증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면증도 비켜(?)가는 사람들
예민한 사람의 경우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을 깨기 때문에 수면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불면증이 먼나라 이야기인 사람들도 있다. 주변을 보면 어디에서든 잠을 쉽게 이루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잘 자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선뜻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기하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유난히 강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이태호(43)씨는 잠 자기 전 늘 머릿속으로 '5분, 5분'을 되새긴다. 누워서 잠이 들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아 늘 아내로부터 "사람이 너무 단순한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핀잔을 듣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채 3분도 안 돼 잠이 들어버린다고 한다.
권성욱(38)씨도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를 상상하기 힘들다. 그는 부부싸움을 한 뒤에도 코를 골며 잠을 잘 잔다. 반면 권씨의 아내는 부부싸움을 한 날이면 한숨도 자지 못한다. 이 때문에 권씨는 아내로부터 늘 신기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권씨는 "고민과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것이 수면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벌어진 일을 가지고 계속 고민하지 않는 성격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은 "스트레스를 받은 후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차이가 난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정서적인 논리로 문제를 접근하는 반면 잠을 잘 자는 사람은 목표 지향적인 논리로 문제를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부부싸움을 예로 들면 정서적 논리로 접근하는 사람은 부부싸움이 끝난 뒤에도 계속 그 문제를 잡고 전전긍긍하지만 목표적 논리로 접근하는 사람은 하나의 목표(단계)가 끝났다는 판단 아래 부부싸움을 잊어버린다. 마치 스트레스를 끄는 스위치가 있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잠을 잘 잔다"고 설명했다.
◆숙면을 위한 생활지침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잠은 건강 유지에 필수적이다. 대한수면연구학회에 따르면 수면은 회복·에너지 보존·기억·면역·감정조절 등의 역할을 하며 잠이 부족한 경우 피곤함과 주간졸림증, 기억력 및 집중력 감소, 급격한 감정기복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심할 경우 우울증·당뇨병'심장병 악화로 이어진다.
하루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운전을 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에 해당하는 상태로 운전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불면증은 반드시 치료를 해야 하는 병이다. 불면증 치료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된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수면장애는 원인이 되는 문제만 제거하면 좋아진다. 원인 치료를 미루고 민간요법에 의존하면 오히려 병이 깊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으로도 불면증을 완화시키거나 치료할 수 있다. 대한수면학회는 건강을 위한 수면지침으로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유지하기 ▷낮에 40분 동안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되 잠자기 3, 4시간 전에는 과도한 운동 삼가기 ▷낮잠은 가급적 피하고 자더라도 15분 이내로 제한하기 ▷잠들기 4~6시간 전에는 카페인(커피, 콜라, 녹차, 홍차 등)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지 말며 하루 중에도 카페인 섭취를 최소화하기 ▷금연하기(잠자기 전과 자다 깼을 때 담배를 피우면 잠자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알코올 섭취 삼가기(알코올은 일시적으로 졸음을 증가시키지만 숙면을 방해한다) ▷잠자기 전 과도한 식사나 수분 섭취 제한하기 ▷잠자리 온도와 조명을 안락하게 조절하고 소음 없애기 ▷습관적인 수면제 사용 금지 ▷스트레스를 이완하는 요가, 명상 등 배우기 ▷잠자리에 들어 20분 이내에 잠이 오지 않으면 일어나 독서 등을 하다 졸리면 잠자리에 들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호원 경북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대한수면학회 지침은 불면증 환자의 50% 정도가 효과를 볼 만큼 이미 검증된 것이다. 단순하지만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의지가 약한 사람의 경우 가족의 도움을 받아 생활습관을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