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의 관전평] 준비된 세트 플레이 성공…16강 결실

입력 2010-06-23 09:48:16

부담감 많은 경기를 잘 극복하고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일궈낸 허정무 감독, 코칭스태프,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전반적으로 상대 지역과 미드필드 지역에서부터 압박하고, 나이지리아의 약점을 파고든 전략과 전술은 좋은 선택이었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미드필드 지역에서 수비수의 공을 가로챈 이청용이 박주영과 패스를 주고 받은 뒤 수비수 뒤쪽으로 돌아들어가며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찬스를 잡으며 초반 주도권을 가져 온 플레이는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멋진 플레이였다.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다 단 한번의 실수로 골을 내주며 전반 흐름을 나이지리아에게 내준 점은 아쉬웠다. 선수들이 당황해 1선과 2선, 3선간의 간격이 넓어지면서 상대에게 여러 차례 기회를 내주는 등 끌려갔다.

이런 점에서 전반 막판, 세트 플레이에 의한 동점골은 다시 경기 주도권을 가져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리스전 첫골 때처럼 완벽하게 준비된 세트 플레이를 성공시켜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반은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전반보다 더 강도높게 상대를 압박하면서 주도권을 가져왔고, 박주영의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역전에 성공, 원정 16강 진출은 쉽게 이뤄지는 듯 했다. 그러나 위험지역에서 김남일이 하지 말아야 할 플레이를 해 동점을 허용, 우리 스스로 어려운 경기를 자초한 결과를 낳았다. 김정우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그리스전에 이어 나이지리아전에서도 빛이 났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16강 진출 티켓을 확보했다. 아르헨티나전 자책골로 위축됐던 박주영의 플레이가 되살아난 점은 큰 소득이다. 수비에서는 안정된 플레이, 자기 위치를 지키는 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제대로 배웠을 것이다.

만약 16강에 오르지 못했다면 나이지리아전에서 보여준 수비 불안은 선수 개개인과 대표팀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남았겠지만, 이를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한 만큼 이날 실수를 보약으로 삼아야 한다.

기쁨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목표를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 맞춰야 한다. 우루과이는 전체적으로 팀 밸런스가 좋은 팀이다. 상대에 따라, 또는 경기 상황에 따라 수시로 스리백과 포백에 변화를 주며 플레이하는 전술적으로 뛰어난 팀이다.

우루과이전의 우선 과제는 수비진의 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미드필드 지역에서 압박을 통해 위험지역으로의 볼 투입을 저지하고,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들을 활용해 우루과이 골문을 노린다면 우루과이 역시 쉽게 공격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전에서 보여준 중원 장악과 나이지리아전에서 보여준 옥에 티를 가다듬으면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16강전이 단판 승부이고 1차 목표를 달성, 부담감을 털어냈기에 더 낳은 성적도 기대해볼 수 있다. 더 높은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대표팀이 넣은 5골 중 4골을 이정수, 박주영, 이청용 등 (내가) 직접 지도했던 선수들의 발끝에서 나와 너무나 흐뭇하다.

이영진 대구FC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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