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한방이야기] 탱자

입력 2010-06-17 14:05:51

5, 6월에 채취해 쪼개 말린 지실-체한 증상'변비 치료

과거 과수원이나 시골집 울타리로 탱자나무를 많이 심었다. 날카로운 가시로 도둑을 막고 귀신을 쫓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잘 심지 않아 탱자나무의 생김새를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봄에 피는 하얀 꽃과 가을에 열리는 노란 열매의 색과 향기는 한번의 경험으로도 오랜 기억을 남겨줄 정도로 인상적이다.

탱자나무는 추위에 약해 중부지방까지가 서식할 수 있는 한계선으로 보인다.

강화도에 있는 400여년 이상 된 천연기념물 탱자나무는 외적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심은 것 중 남은 일부라고 한다.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은 도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성벽 둘레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탱자성이란 의미로 지성(枳城)이라고도 했다.

중국의 고사 중 귤화위지(橘化爲枳) 혹은 남귤북지(南橘北枳)도 탱자와 관련된 이야기다.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그의 기를 꺾기 위해 초나라 영왕이 제나라의 도둑을 잡아놓고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안영은 "귤나무는 회수(淮水) 남쪽에서 자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고 합니다. 저 사람도 초나라에 살았기 때문에 도둑이 됐을 것입니다"라고 응수했다.

나무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하듯 사람도 성장환경에 따라 선(善)하게도 악(惡)하게도 될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탱자나무는 3, 4m까지 자라며 꽃은 5월에 피고, 귤과 비슷한 열매는 9, 10월에 노랗게 익는다. 탱자나무의 미성숙 과실을 5, 6월에 채취해 쪼개 말린 것을 한약재명으로 지실(枳實)이라 하며, 성숙기가 가까운 7, 8월에 채취해 절단한 후 말린 것을 지각(枳殼)이라 한다. 둘은 구성 성분이 비슷하지만 한방에서는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한의학적으로 지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약의 품질과 효과가 좋아지는 6가지 약인 육진양약(六陳良藥)의 하나로, 채취한 지 오래된 것을 상품으로 친다. 성질은 차며, 맛은 쓰고 맵고 시다.

기를 움직이는(行氣) 힘이 강해 몸속에 맺힌 기나 복부의 딱딱한 덩어리 같은 적취(積聚)를 치료하는 데 쓴다. 가슴과 배가 팽만하거나 아픈 증상, 가슴이 답답하거나 더부룩하며, 복부에 딱딱한 덩어리가 있는 경우, 체한 증상, 변비 등을 치료한다.

지실은 파기(破氣) 작용이 강하므로 정기(正氣)를 상하게 할 우려가 있어서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판단될 때 사용해야 한다. 지각은 맛이 쓰고 매우며, 성질은 서늘하다. 성미와 효능이 지실과 비슷하나, 작용이 지실에 비해 비교적 느리고 부드럽다. 흉'복부 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인체의 병리적인 산물인 담(痰)과 복부의 덩어리를 없애는 효능이 있다.

담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옆구리가 결리는 증상, 식도에서 위로 들어가는 부분을 누르면 아프면서 소화가 잘 되지 않고 트림이나 구토가 나는 증상 등을 치료한다.

최근에는 지실과 지각이 조직을 수렴하는 효능이 있어 위하수'자궁하수'탈항 등의 증상에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도움말:한상원 대구시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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