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생각 열린 교육] 한 줄도 너무 길다

입력 2010-06-15 07:43:47

현재를 적자 생존시대라고 한다.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는 의미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을 이순신 장군답게 만든 것도, 후세대가 장군을 기억하는 것도 바로 '난중일기' 때문이다. '난중일기'는 임진란 7년에 걸친 장군의 자필 일기이다. 임진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 1월 1일에 시작하여 전사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6일까지, 전체 2천539일 가운데 1천600여 일에 일어난 일을 13만여 자로 기록해 놓았다. '난중일기'에는 전쟁과 관련된 자세한 기록도 있지만 날씨나 사람의 왕래처럼 단순한 일상을 기록한 한 줄짜리 글도 많다.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글쓰기라고 하면 독후감과 논술만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의 본질적인 모습과 그가 살아가는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글은 일상을 기록한 생활글이다.

그래서 글쓰기 교육은 생활 글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활 글쓰기는 일상 생활 속에서 겪은 일이나, 보고 느낀 생각을 분량의 부담 없이 그대로 쓰는데서 출발한다. 글쓰기는 본 것을 자세하게 쓰는 서사글에서, 설명하는 설명글, 느낌을 쓴 감상글, 주장하는 주장글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정서적인 글쓰기에서 출발하여 논리적인 글쓰기로 나아가야 한다. 논리적인 글도 정서가 밑바탕에 녹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어린 나이부터 정서가 충만한 글보다 논리적으로 따지는 글을 먼저 쓰면 이상한 인간으로 자랄 가능성이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서 눈물 흘리지 않고 할아버지의 사인이 무엇인가 따지는 풍경을 그려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2007년부터 지역의 학교에서는 생활 글쓰기 운동인 '삶쓰기 100자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삶쓰기 100자 운동'은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겪은 일이나 느낀 생각을 솔직하게, 매일 100자 정도 써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글쓰기와 친해지도록 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3년의 일기장인 '삶쓰기 100자 노트'를 보급하였다. 3년간 같은 날짜를 같은 페이지에 배치하여 1~2년 전의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매일 100자 이상을 쓸 수 있도록 하였다. 3년의 기록이 이루어짐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여 미래를 준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100자 노트를 보급하고 난 어느 날 초등학생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가 왔다. 아이가 집에 와서 삶쓰기 100자 노트를 쓰는데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99자도 아니고 101자도 아닌 꼭 100자를 맞추려고 하니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이다. 100자는 분량의 부담에서 벗어나자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숫자이다. 글은 한 페이지를 모두 채워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100자 미만이든 100자 이상이든 자연스럽게 써보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100자 꼭 맞추어 쓰려고 했으니 초등학생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카이스트 안철수 교수는 생각이 떠오를 때 반드시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했다. 그 정도의 메모는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생활 글쓰기도 분량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제 생각대로 마음껏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글은 꼭 길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길다고 좋은 글도 아니다. 학생들의 솔직한 삶이 담긴 글이라면 한 줄도 길다.

한원경(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담당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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