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열등감 등 복합작용…비현실 공간서 대리만족
인터넷과 게임에 빠져있다며 병원에 온 30대 후반 A씨. 수년 전부터 인터넷 게임에 맛을 들여 밤샘을 하기 시작, 지각'결근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결국 직장마저 그만두었다. 집에서도 게임을 하느라 부인, 아이들과도 거의 어울리지 못했다. 부인과는 자주 다퉜고, 그럴수록 더 게임에 몰두했다. 견디다 못한 부인이 치료를 받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경고하는 바람에 병원에 오게 됐다.
◆현실 도피를 위한 도구, 인터넷과 게임
A씨와 면담을 해보니 감정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다. 대학시절 공부도 잘 했고 꿈도 많았던 그는 꿈을 이루고자 여러 직장을 알아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전공과는 상관없는 직장에 들어갔지만 적응이 힘들었다. 일에 대한 흥미나 만족감도 없었고, 상사'동료와의 관계도 원만치 못했다. 원래 내성적이어서 퇴근 후에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편이었다.
선 보고 결혼을 한 부인과도 성격이 맞지 않아 갈등이 많았다. 부인은 직설적이고 활발한 성격이었지만, 본인은 그렇지 못했다. 늘 끌려가는 입장이었고, 가장으로서 제대로 자신의 생각이나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다.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다.
시간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현실과는 다른 세상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인터넷상 자신은 현실 속 자신의 모습과는 달랐다. 어느 누구도 자기를 모른다는 익명성에 힘입어 평소 모습과는 달리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원색적 비난이나 욕하는 글을 자주 올리게 됐고, 인터넷 게임을 통해서는 자신에 대한 성취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늘어나는 성인 인터넷 중독자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중독에 대한 심각성과 폐해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대 이후 성인의 인터넷게임 중독에 대한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2009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인터넷 중독자 수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20, 30대 후반 성인 인터넷 중독자는 오히려 늘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만 9~39세 인터넷 사용자 중 중독자는 191만3천명(8.5%)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8년에 비해 8만6천명가량 줄어든 것.
그러나 30대 인터넷 중독자는 40만2천명(5%)으로 오히려 2008년보다 1만2천명이 증가했다. 30대 인터넷 중독자의 증가는 경기침체에 따라 구직난과 고용불안이 가중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20~39세 성인 무직자의 경우, 5만3천명(9.6%)이 인터넷 중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중독비율인 8.5%보다 1.1%포인트 높은 수치다.
30대 중에는 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인터넷으로 문제가 생길 위험에 처한 사람들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게임 중독에 빠진 부부에 의해 아기가 굶어 죽은 사건이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본 인터넷 중독
정신의학계에서는 알코올'마약 중독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중독도 의존성과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다. 즉, 내성이 존재해 점차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이나 양이 증가한다는 것.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인터넷을 하고 싶은 욕구나 생각의 증가 등과 같은 금단증상이 나타나며, 이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고통이나 장애가 유발되는 경우 인터넷 중독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인터넷 중독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 겉으로는 인터넷 중독만이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A씨의 경우에도 본인 성격문제를 포함해 대인관계의 어려움, 부인과 갈등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같이 겹쳐져 있었다.
중독 원인으로는 심리적'사회적'생물학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심리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열등감,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분노감 등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고, 이를 인터넷이나 게임을 통해 대리만족하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20, 30대 후반 성인은 취업의 어려움, 청년실업 증가, 맞벌이부부 증가, 출산율 저하 등 여러 사회적 현상과 관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으로는 충동성과 연관된 뇌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이를 해결하려면 먼저 환자 스스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모든 중독현상에는 대개 심각 정도를 부정하거나 가볍게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많기 때문. 주위로부터 자주 걱정하는 말을 듣거나 스스로도 인터넷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장애가 초래되는 경우 과연 내가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문제인지 파악하고, 중독단계 이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이 필요하다면 굳이 병원까지 오지 않더라도 지역마다 있는 '인터넷 중독 상담센터'를 이용하는 게 좋다.
심각한 장애를 보인다면 병원에 가야 한다. 영남대병원 정신과 구본훈 교수는 "인터넷 중독이 어느 정도인지, 이로 인해 다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이차적 문제가 같이 동반되고 있는지 면담과 심리 검사를 통해 확인하고, 때로는 동반된 문제나 충동성을 조절하기 위해 약물 치료를 같이 한다"며 "아울러 이면에 있는 성격문제나 대인관계 어려움 등에 대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 교수는 또 "환자가족도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데, 환자가 인터넷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감정적 어려움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환자가 인터넷을 못하게 막거나 설득하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영남대병원 정신과 구본훈 교수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