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4월 미국은 2차 대전 후 독일 점령지에서 화폐로 사용할 군표(軍票) 인쇄용 동판(銅版)을 소련에 넘겨줬다. 소련은 이 동판으로 군표를 찍어 미국 물자를 구입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입은 피해는 2억 5천만 달러에 달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주도한 인물은 케인스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창립을 이끈 미국 재무부 해외 담당 책임자 해리 덱스터 화이트였다. 그는 재무부에 들어갔을 때부터 미국 공산당의 지하 조직원으로 활동했던 간첩이었다.
루스벨트와 트루먼 대통령 집권 초반까지 미국 조야(朝野)에는 이런 좌파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 조지프 데이비스는 스탈린과 소련을 찬양하는 전문을 일관되게 본국 정부에 보냈다. 언론계도 마찬가지였다. 뉴욕타임스의 해럴드 데니, 그의 동료인 모스크바 주재 통신원 월터 듀런티는 소련의 반혁명분자 재판은 매우 공정했다는 거짓 기사를 남발했다.
'빨갱이'들이 미국 정부에 침투하고 있다는 얘기는 1930년대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경고음이 울려댔지만 루스벨트 행정부는 이를 듣지도 믿지도 않았다. 이러한 미국 내 '붉은 물결'은 트루먼 대통령이 1947년 3월 모든 연방정부 공무원의 정치적 신념과 친분 관계에 대한 조사권을 부여한 행정명령 9385호를 발동하고서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법무부, 대외경제국, 경제 전쟁 위원회를 통해 기밀 정보가 유출됐으며 육군부와 해군부, 전쟁정보국, 전략사무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현대사의 치부(恥部)인 매카시즘은 바로 이런 비옥한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흑금성 사건, 황장엽 암살조 사건, 탈북자 사냥꾼, 인터넷 채팅 여간첩 사건 등이 지방선거를 전후해 공개된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이들 사건을 지방선거에 활용하기 위한 공안 정국 조성 기도라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과거 반공제일주의가 낳은 전형적인 부작용이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체제 대결에서 남한은 북한에 완승했다. '레드 콤플렉스'의 정치적 활용 가치는 그만큼 낮아진 것이다. 이제 정치 공작을 위해 공안 정국을 조성하는 것은 '양치기 소년' 꼴 되기 십상이다. 간첩 사건 발표를 정치적 음모로 보는 사시(斜視)도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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