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노스페이스

입력 2010-06-05 08:50:04

알프스 '죽음의 북벽' 불굴의 등정기, 다큐멘터리 방불

스위스의 아이거산 북벽은 '죽음의 빙벽'이라고 불린다. 하루 종일 햇볕이 들지 않고, 돌풍과 눈사태 등 돌발사고가 많아 등반가들에게는 경외와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부산영화제에서 첫 소개된 이후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입소문으로 인기를 끈 독일영화 '노스페이스'(2008년)가 이번 주 개봉했다. 다큐멘터리처럼 강건하고 묵직해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노스페이스'는 북쪽 벽을 뜻하는 '노르트반트'(Nordwand)의 영어식 표현이다. 1936년 아이거 북벽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실화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테호른, 그랑드조르도와 함께 알프스의 3대 암벽 가운데 하나인 스위스 아이거산의 북벽. 수직 높이 1,800m의 아이거 북벽은 지금까지도 가장 등반하기 어려운 곳으로 6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한국 등반가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1936년 독일 나치는 올림픽 개회를 앞두고 국위 선양을 위해 죽음의 아이거 북벽 첫 등정을 등반가들에게 부추긴다. 세계 대전을 준비하는 독일이 아리아 민족의 우수성을 스포츠를 통해 입증해 보이겠다는 시도였다. 그러나 워낙 위험한 일이라 선뜻 나서는 이들이 없었다.

어릴 적 동네 친구로 군에서 산악병으로 복무 중인 토니(벤노 퓨어만)와 앤디(플로리안 루카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이거 북벽을 처음으로 정복하겠다는 일념을 잠재울 수 없었다.

이들의 등정이 알려지면서 기자들과 관람객들이 아이거 북벽 아래 호텔로 모여든다. 토니와 앤디의 고향 친구로 베를린에서 신문사 사진기자로 있는 루이즈(요한나 보칼렉)도 찾아온다. 한때 옛 연인이었던 토니는 그녀 곁에 새로운 애인이 있음을 알고 실망해 출발을 서두른다.

독일 등반대에 이어 오스트리아 산악인 윌리(시몬 슈바르츠)와 에디(게오르그 프리드리히)가 뒤따르자 아이거 북벽 도전은 마치 두 나라의 국가 대결로 비친다. 수많은 취재진들은 쌍안경으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초조하게 지켜본다.

유럽의 등산가들에게 1,800m의 아이거 북벽을 오르는 것은 성배를 찾아 떠나는 모험과 같은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특히 1930년대 조악한 등반 장비로 이 빙벽을 오르는 것은 목숨을 담보한 일이었다. 토니와 앤디도 직접 쇠를 달구고 두들겨 피톤을 만들기도 한다. 로프도 새끼줄이나 마찬가지며, 옷도 마대자루 같은 소재다. 특히 빙벽을 치고 돌아오는 눈바람과 수시로 떨어지는 낙석, 눈사태 등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도록 만든다.

뮤직비디오 광고와 오페라를 연출했던 필립 슈톨츨 감독은 등반 시도에서부터 위험한 과정, 그리고 실패에 이르기까지 126분 동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관객을 빙벽으로 몰아넣는다. 오스트리아 등반대가 악천후에 부상을 당하면서 네명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힘들게 내려오지만 어느새 그들은 빙벽 중간에 갇히고 고스란히 눈 폭풍 속에 남게 된다.

그동안 '클리프 행어'나 '버티컬 리미트' 같은 할리우드의 산악 액션 영화가 인기를 끌었지만 '노스페이스'는 아이거 북벽과 산악인들의 등반 과정 자체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극한의 상황에 몰린 등반가들의 내면까지 포착하고 있다.

죽음의 절박함 속에서도 동료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 희생과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루이즈의 절규 등이 실화라는 힘에 의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짧은 거리임에도 구조를 허용하지 않고 막아서는 거대한 자연의 혹독함, 절박함, 안타까움 등이 가슴을 때린다. 거기에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이어지는 화면은 다큐멘터리처럼 생동감 넘친다.

주연 배우들의 호연도 호연이지만 아이거 북벽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얼음을 뒤덮어쓰고 눈보라를 불어 대는 것이 잔혹 동화의 마녀처럼 느껴진다.

등반을 좋아하는 이들은 꼭 봐야 할 작품이다. 참고로 영화에서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빙벽 틈 속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을 '비박'(biwak)이라고 한다. 1박 하지 않는 것을 비박(非泊)이라고 막연하게 여겼는데…. 또 험한 이 빙벽과 대조적으로 인근 베르네 계곡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촬영했던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26분.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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