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40번, 가족에게 미안"…6·25 장사상륙작전 추모공원 사업
별 4개가 떴다. 어! 그런데 무서운 인상이 아니고 푸근하네. 대한민국 군인 중 별 4개는 손가락에 꼽을 만한데 이렇게 한 시간 이상 흉금을 터놓고 인터뷰를 하다니. 실제 그렇단다. 제2군 창군 이래 이런 사령관 인터뷰는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헷갈렸다.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까지 들었다. 인터뷰가 한 시간을 훌쩍 넘어가는데 이철휘 제2작전사령관이 인터뷰를 하는 기자에게 오히려 묻는다. "다음 일정 바쁘지 않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점점 초조해지는 기자가 쫓기지 않고 충분히 취재할 수 있도록 해 준 배려였다.
그는 "대장으로 승진한 후 대구에서는 처음 근무하는데 무뚝뚝함과 같은 대구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깨지고 있다"며 "가능하면 지역민과 함께하는 행사에 얼굴을 많이 비칠 것"이라고 말했다.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3일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 회의실에서 이철휘 사령관을 만났다.
◆손자, 손녀 둔 할아버지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고일리에서 태어나 올해로 만 56세인 이철휘 사령관. 벌써 할아버지다. 슬하의 1남1녀가 벌써 결혼해 손자, 손녀를 안겨준 것. 이 사령관 본인은 1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 군인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인생이 이렇게 풀릴 줄은 몰랐다. ROTC(학군) 13기로 임관하면서부터 군인이 적성에 딱 맞다 여겼고, 열정을 다했다. 쟁쟁한 육사 출신들을 제치고 대장까지 올랐다. 전공도 특이하다. 명지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명지대에서 리더십으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는 연대장, 육군본부 인력획득과장, 군 참모장, 인사처장, 사단장, 군단장 등을 거치면서 처음과 끝을 항상 생각했다. 언제나 논리적이고 계획적이면서도 조직에 따뜻함이 묻어날 수 있도록 부단히 고민하며 애를 썼다. 아마도 이런 마음의 자세가 그를 '포 스타'(★★★★)로 이끌었으리라.
농담처럼 가슴 찡한 얘기를 던졌다. "가족들에게 참 미안합니다. 특히 이사를 40번이나 했는데도 잘 참고 따라준 아내에게. 딸은 초등학교를 6번, 아들은 4번이나 옮겨다녔는데, 언젠가 아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번에는 숙제 안 내 주는 학교로 전학을 가요.'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눈물이 맺힐 정도로 미안했습니다."
부인에게 띄우는 공개편지를 부탁했더니 늘 마음에 담아둔 얘기인 듯 의외로 어렵잖게 나왔다. "여보, 미안하고 고마워. 가정은 항상 뒷전인 군인 남편을 잘 따라줘서. 장인·장모님 문병차 미국에 한번 간 것이 해외로 함께 간 전부인데 프랑스든 스위스든 당신 가고 싶은 곳으로 내가 꼭 멋진 해외여행을 시켜줄께. 전역 후에라도 약속 지킬테니 믿어줘."
◆지역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
별 4개인 사령관을 보고 싶으면 제2작전사령부가 올해 계획하고 있는 공개행사에 참석하면 될 듯싶다. 제2작전사령부에서 아이디어가 빛나는 기획을 많이 했다. 지난달 29, 30일에는 '낙동강지구 전투 전승기념 제2작전사령관기 태권도 대회'를 열어 성황리에 마쳤다. 올 10월 1일부터 3일까지는 포항에서 낙동강 호국 벨트를 따라 경남 마산까지 이어지는 2박3일 코스의 마라톤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전국 각지의 마라톤 클럽에서 참가해 조금씩 구간을 나눠 이어달리기를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벌써 마라톤 마니아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이 밖에도 '다부동 지구 전투 재연' '낙동강 방어선 전투 학술세미나' '낙동강 방어 전투 전적지 답사'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 '장사상륙작전 추모공원 조성' 등 다양한 행사와 사업들로 지역민과 함께할 예정이다. 주요 행사에는 이 사령관도 참석할 계획.
인터뷰 도중 이 사령관은 강조하고 싶은 듯 "장사 상륙작전에 대해 아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북한군을 유인하기 위해 포항 장사 해안으로 학도병을 태운 배들을 보내 이들이 희생된 작전"이라며 "이 작전으로 희생된 병사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경북도와 함께 240억원을 들여 장사 해수욕장 인근에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이 사령관은 "6·25전쟁을 기념해 당시 참전했던 미군 참전용사 및 가족 100명을 대구로 초청, 당시 전투를 치렀던 곳을 둘러보면서 우리 지역을 알리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기는 믿음으로 극복해야
이 사령관에게 인생의 가장 큰 위기가 언제였냐고 묻자 군사령부 근무과장(대령)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군의 각종 행사와 전반적인 총무 일을 도맡아 했는데, 아무리 해도 표시는 안 나고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 군복을 벗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며 "그 위기를 잘 극복하고 나니 장군 승진과 함께 일이 더 잘 풀렸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의 하나된 마음과 군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북한군의 기습에 의한 도발이라는 군의 발표를 100% 믿어야 합니다. 기습은 어떤 형태로든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 군이 당한 만큼 국민들은 군에 힘을 실어줘야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북한의 또 다른 도발이나 기습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젠 선거도 끝난 만큼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안보에 관한 한 국민이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하는데 본인이 군 생활을 하면서 대장까지 진급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사실 승진할 때마다 전 기수가 승진이 누락될 때를 제외하곤 꼭 승진의 기회를 잡았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따진다면 운오기오(運五技五)"라며 환하게 웃었다.
야전과 정책을 두루 거친 덕장(德將)인 이 사령관은 인터뷰를 끝내고 탁상용 기념시계를 하나 주면서 이런 농담을 했다. "탁상용 시계 옆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하나씩 빼서 쓰시라." 모조 다이아몬드 수십개를 보면서 큰 웃음이 터졌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제2작전사령부는?=경상·전라·충청 6개 도와 5개 광역시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다. 예전에는 강원·경기 일부까지 포함한 한강 이남 전체가 2작전사의 관할이었다. 지금은 1군은 강원도, 3군은 경기도가 해당된다. 총 5천㎞가 넘는 광활한 해안선과 국가 산업시설의 70%, 국민의 52%가 거주하는 넓은 작전 지역을 갖고 있다.
◆급식실명제·자전적 시간관리…따뜻한 리더십 전도사
4방향 리더십 개념 등 정립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면 보입니다. 내가 할 행동이."
리더십에 관한 박사학위 소지자답게 이철휘 제2작전사령관은 세심한 배려, 따뜻함이 묻어나는 리더십 철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의 철학은 급식 실명제, 4방향 리더십, 자전적 시간관리 시스템 등으로 나타났다.
'밥 먹는 것만 봐도 사병들의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게 급식 실명제의 핵심. 이 사령관은 6년 전 사단장으로 복무할 당시 병사들의 급식 상태에 늘 관심을 가지면서 밥을 잘 먹지 않거나 연속적으로 끼니를 거르면 분명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각 병사들의 급식 상태를 일일이 확인해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병사은 무슨 이유인지 상담을 통해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줬다. 이 방법은 장병들의 건강관리뿐 아니라 사고예방에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지금은 2군 전체가 급식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 밖에서 놀다 집에 들어오면 항상 '밥은 먹었니'라고 물으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군대에 들여놓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4방향 리더십은 유기적 조직에서 리더가 더 빛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론서나 주장에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참모를 거느린 지휘관을 맡았던 대대장 시절부터 정립해온 개념이다. 4방향 리더십은 말 그대로 상하좌우에 잘하자는 것. 위로는 상관에게 충성하고, 좌·우로는 동료 및 같은 급의 다른 부대(부서)에 신의와 신뢰를 쌓고, 아래로는 부하들에 사랑과 관심을 베풀자는 것. 기자가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지 않으고 묻자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4방향 모두 균형감을 갖춘다면 좋은 리더십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자전적 시간관리 시스템은 각자 해야 할 업무를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이를 토대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일단위 시간계획 프로그램이다. 각자 그날 해야 할 일을 프로그램에 입력해 두면 컴퓨터에 링크해서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대로 확인할 수 있다. 하루 일과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의 효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업무 협조도 원활해지는 효과가 있다.
리더십에 관한 외부 특강도 자주 나가고 리더십에 관한 책 '나는 이런 리더가 좋다'는 책까지 펴낸 이 대장은 "진정한 리더는 조직 구성원 모두가 목표를 공유한 가운데 그 인격과 인품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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