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

입력 2010-06-03 15:29:06

전쟁이 애국의 길이라는 군국 소년의 어리석음에 대해 비판

사토 다다오의 『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를 읽었다. 제목이 나타내듯이 이 책의 저자는 소년병이었다. 저자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여 본격적인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서기 한 해 전인 1930년에 태어나 군국 소년으로 길러졌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충성심과 애국심을 증명하고 싶어서 소년병으로 참전했던 저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던진다.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찰에 의하면 전쟁으로 가는 데 큰 작용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물을 자신의 입맛대로만 해석하고 멋대로 단정짓는 경향이다.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침략했지만, 당시 일본인들은 그 행위를 침략이라 여기지 않고 아시아를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본인들이 보기에 조선이나 중국의 반일 민족운동이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을 뿐이다. 이런 잘못은 일본인들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소련도, 미국도 끊임없이 이런 일들을 저질러왔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폭력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전쟁과 폭력과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역사 속에서 인류가 진보해 온 모습을 끌어낸다. 전쟁으로 가는 길에서 자기 나라가 잘못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서는 미국의 잘못을 반성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 반전운동은 미군의 철수를 가져온 중요한 동력 중 하나였다.

때로는 국내에서 반전운동이 펼쳐지지 않았어도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 소련처럼 스스로 전쟁의 잘못을 깨닫고 철수한 일도 있다. 저자는 이런 자발적인 철수는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소련은 철수를 단행한 반면 일본은 자멸과 마찬가지인 태평양전쟁에 뛰어들어 버린 것이다.

패전의 충격과 고통 속에서 일본의 군국 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전쟁의 참혹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 반면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서 일제에 의해 군국소년으로 길러진 조선인 청년들은 저자처럼 평화주의자가 되지 못했다. 해방 이후 격심한 좌우대립에 빠져들었고 한국전쟁을 치러야 했다. 3년간 치열하게 싸운 끝에 포성은 멎었지만 승패는 없었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남북은 늘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였고, 동족을 향한 증오와 분노의 총구는 여전히 서로를 향해 있다. 일상적인 전쟁의 위협 속에서 지내다 보니 전쟁의 참혹함을 잊고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해제를 쓴 역사학자 한홍구는 대한민국을 군국 소년들이 만든 나라라고 말한다. 일제가 남긴 군국주의의 잔재를 성찰하고 씻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시킨 군국 소년들, 그들이 만든 것이 바로 병영국가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희생이 컸던 우리나라지만 전쟁을 부추기는 목소리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들려오고, 평화로 향한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인류의 평화를 지키고 가꾸는 것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믿는 저자 사토 다다오는 전 세계에서 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성찰한다. 학교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은 평화의 중요성이며, 평화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며, 우리 사회에도 평화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과 고민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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