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데니스 호퍼

입력 2010-06-01 10:45:30

두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올리언스로 길을 떠난다. 얼핏 가난해 보이지만 오토바이는 멋진 할리 데이비슨이다. 이들의 길 떠나기는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다. 굳이 붙이자면 매카시즘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운동과 월남전에 대한 반성이 휩쓰는 미국의 현실을 체험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보겠다거나 참여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마약 밀매라는 부정한 방법으로 오토바이를 사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이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뉴올리언스로 가는 길에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는 히피족을 만나고, 이들의 복장에 기분이 상한 경찰에 의해 철창에 갇히기도 한다. 유치장에서 만난 알코올 중독자이자 기성세대의 억압에 찌든 변호사와 동행하지만 그도 남부 청년들에 의해 죽는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남부로 향하지만 목적지에 닿기 전에 차를 타고 가던 농부에 의해 사살된다.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이들의 꼴이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1969년 데니스 호퍼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이지 라이더(Easy Rider)가 발표됐을 때 사회의 반향은 엄청났다. 그저 그런 배우에 지나지 않았던 데니스 호퍼는 일약 미국 뉴시네마의 기수가 됐고, 이 영화는 자유, 허무, 히피 등을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함께 공동 주연을 맡은 피터 폰다는 별칭인 캡틴 아메리카로 불렸고, 그가 입은 성조기 문양의 재킷이 대유행했다. 이지 라이더는 '기둥서방'이라는 뜻의 미국 남부 속어라고 한다.

이들이 사살된 뒤 허공을 맴돌던 오토바이의 바퀴도 인상적이었지만 위스키의 독한 맛에 입을 쩍쩍 벌리며 불량하게 대사를 내뱉던 잭 니콜슨의 연기도 잊을 수 없다. 또 전편에 흐르던 지미 헨드릭스, 스테판 울프, 일렉트릭 프룬즈 등 60년대 사이키델릭 록의 광폭함도 빼놓을 수 없다. 음악은 데니스 호퍼가 직접 선곡했다고 한다.

연기자로서나 감독으로서나 B급이던 데니스 호퍼가 지난달 29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사진작가, 블루 벨벳에서의 성도착자로 열연해 수많은 컬트 팬을 만들었던 그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주연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조연'이라는 말이 그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찬사일 것 같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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