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대(서울 정치팀 차장)
공천 개혁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후보 선정과 관련,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심사를 역설했지만 밀실공천이니 사천(私薦)이니, 혹은 계파 간 나눠먹기를 했다는 등의 비난이 잇따랐다.
제도적으로는 양당 모두 국민공천배심원단(한나라당)이나 시민공천배심원제(민주당) 등과 같은 기구까지 신설하는 등 공정한 공천 의지를 보였으나, 이 같은 기구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특정 계파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등의 논란을 초래했다.
국민공천배심원단의 경우 공천심사위에서 추천한 전략공천 후보나 비례대표 후보에 대해 하자가 없는 지 등을 검증,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나 이번 선거에서 그다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공심위가 후보 심사를 철저히 함으로써 하자있는 후보를 미리 걸러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일부 선거구에서 공천받은 후보가 선거 막판 의혹에 휩싸였던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시민배심원단의 투표로 후보를 결정하는 시민공천배심원제 역시 이번 선거에서 몇몇 선거구에서만 적용됐을 뿐이었다.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지역 실정을 모르는 외부 인사에게 공천을 맡길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반발했다는 것이다.
이들 기구가 뿌리내리기 어려웠던 것은 국회의원들이 지방선거 후보공천에 깊이 개입하고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의원들은 "선거구 사정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해당지역 국회의원에게 공천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등의 현실론을 내세우기도 하나, 현지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게 공정한 공천까지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사람 심기, 나아가 계파 간 나눠먹기식 공천으로 전락할 공산이 커진다.
총선을 떠올리면 아이로니컬하기도 하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총선에서는 투명한 공천심사를 요구한 뒤 공천에서 탈락하면 밀실공천이나 특정 계파를 겨냥한 공천학살이라는 식으로 거세게 반발해왔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자신도 사천을 했다는 비난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공천실명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국회의원들이 해당지역 선거구의 후보 선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어떤 후보가 낙선하거나, 당선되더라도 각종 의혹이나 비리사건에 연루될 경우에는 그를 공천한 국회의원이 책임지도록 해야 하며 책임 방안으로 차기 총선의 후보 공천과정에 일정수준 반영하거나 아예 공천심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 등이 거론될 수 있겠다. 현재도 이런 취지가 일부 반영되고 있다고는 하나, 자의적'선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만 키울 수 있기에 실명제를 명문화시켜야 한다.
실명제가 건설현장이나 농'공'수산품에는 이미 도입돼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이라고 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공천실명제가 국회의원 개인에 의해 지방선거 후보를 선정토록 하기에 공정한 심사의지를 후퇴시킨다고 할 수도 있으나, 차기총선 출마를 의식해야 할 의원들이 무리한 공천을 하는 게 쉽지않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기하기에는 현재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
선거구의 사정 등으로 실명제가 부담될 경우에는 경선으로 후보를 결정하는 방안도 함께 실시할 수 있겠다. 후보들이 난립한다면 여론조사를 통해 압축하면 될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이 상품을 제대로 팔지 못하면 시장에서 밀려나거나 도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도 자신이 내세운 후보가 떨어지면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패널티를 받도록 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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