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에게 데뷔전은 평생 잊지 못하는 순간이다.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더라도 곧바로 그라운드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프로 무대에는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만 입단하기에 탁월한 기량을 보여야만 선발을 꿰찰 수 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입단 후 곧바로 데뷔전을 치르는 경우는 드물다. 일단 실력을 갖춰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주전 선수의 부상이나 부진 없이는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가 쉽잖다.
유명한 프로 선수들 역시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쳤다. 프로 데뷔전은 관중에게 첫 모습을 보이는 무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기회, 그래서 배짱 좋은 선수라고 해도 긴장과 떨림은 극도에 달한다. 물론 데뷔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그 길로 야구 인생의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다고 끝도 아니다.
삼성 라이온즈 정인욱은 이달 14일 목동 넥센전을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은 그의 프로 첫 선발 데뷔전. 2009년 삼성 2차 3순위로 입단한 정인욱은 지난해에는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지만 구단이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삼성의 선발진을 이끌 유망주라는 수식어 속에 2군에서 꾸준히 선발 수업을 받았다.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올 시즌 초반 삼성 선발진의 부진이 거듭되며 1군으로부터 긴급 '콜'을 받은 것이다. 실제 데뷔전은 중간계투로 나선 이달 4일 롯데전이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0대3으로 뒤진 2회초 2사 만루, 첫 상대는 타점 1위 롯데 자이언츠의 홍성흔이었다. 그날 전광판에는 낯선 선수의 등판에 익숙지 않은 듯 이름을 '정현욱'으로 잘못 기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 정인욱은 공격적 피칭으로 홍성흔을 파울 플라이로 잡으며 그의 이름을 알렸다. 그날 3.1이닝 동안 4개의 안타를 맞고 3실점 하며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운명의 14일이 다가왔다. 그의 데뷔 첫 선발 무대.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4이닝 14실점.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한 경기 최다 실점이었다.
데뷔전에서 심어준 강한 인상으로 선발 기회를 빨리 잡았지만 그 결과는 잔혹했다. 자신의 야구인생에서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에 정인욱은 넋을 잃었다. 다시는 마운드에 설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한 과정이 되었길 바랄뿐이다.
국내 최고의 좌완으로 꼽히는 SK 와이번스 김광현. 그 역시 데뷔전에서 4회를 버티지 못하고 강판을 당했다. 많은 실점을 하진 않았지만 입단 전부터 기대가 너무 커 실망도 컸다. 그해 김광현은 끝내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경험을 부끄럽게만 여기지 않았다. 김광현은 데뷔 이듬해 팀의 에이스로, 한국의 대표 좌완투수로 성장했다.
반면 지난해 한화에서 은퇴한 송진우 투수는 데뷔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했고, 한화의 류현진도 역대 신인 탈삼진 타이기록(10개)을 세우며 데뷔전을 치른 후 시즌 MVP와 신인왕을 수상했다.
데뷔전은 자신의 상품가치를 알리는 가장 좋은 무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데뷔전을 망치더라도 그 경험을 마음에 새겨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다.
이동수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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