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프런티어]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이창영 교수

입력 2010-05-17 07:09:29

뇌 혈관내 수술법 개척, 10년간 1200례 이상 집도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이창영 교수는 앞으로 뇌혈관의 혈관내 수술을 더욱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이창영 교수는 앞으로 뇌혈관의 혈관내 수술을 더욱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

명함이 없다기에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뇌혈관 수술의 대가로 꼽히는 뇌 분야 전문가가 자기 휴대폰 번호도 못 외우다니. 출신 학교를 물었더니 학교 이름도 가물가물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묻는 기자가 당황스러워졌다. 하지만 잠시 뒤 그런 당혹감은 사라졌다. 10년 전 수술 기록을 물었더니 어떤 환자였고, 무슨 수술법을 했는데, 1년 뒤 경과가 어떠했는지까지 마치 바로 어제 일을 떠올리 듯 생생하게 기억해 냈다.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이창영(48) 교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장학금 받으려고 의대 진학

본론에 앞서 의과대학에 진학한 이유부터 물었다. "사실대로 답해야 합니까, 아니면 조금 포장을 할까요?" 양쪽 다 답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그는 "사실은 점수에 맞춰서 왔고,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뭔가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셨고, 저는 2남2녀 중 막내였습니다. 한번도 제 물건은 새것을 써본 적이 없어요. 전부 물려받았습니다.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의대 진학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공대가 인기였다. 의대는 형편이 넉넉해야 가능했다. 이 때문에 그의 친구들 상당수는 서울대 공대에 진학했다. 대학 학비를 대기 어려웠던 그는 전액 국비로 다닐 수 있는 한국해양대 항해과에 특차 지원을 했다.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 떨어졌다. 시력 때문이었다. 난시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결국 재수를 했습니다. 2차에 붙으려고 시력검사표를 전부 샀습니다. 외워서라도 통과하려고 했죠." 그때 주위에서 조언을 했다. 장학금을 받으면 되니까 의대에 가라는 것. 결국 그는 계명대 의대에 진학했고, 한 학기를 빼고 전부 장학금을 받았다.

◆나는 하이브리드 의사다

그는 '하이브리드'(Hybrid) 의사다. 뇌혈관 수술은 크게 두개골을 여는 '미세현미경 혈관수술'과 뇌혈관에 바로 미세기구를 삽입하는 '혈관내 수술'로 나뉜다. 두 가지 수술법을 다 쓰는 의사를 하이브리드라고 부른다. 국내에서 임상경험이 축적된 하이브리드 의사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뇌혈관 수술은 거의 다 개두술, 즉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이었습니다."

혈관내 수술은 심장분야에서는 그다마 보편화됐지만 뇌수술에 응용된 것은 비교적 최근. 1990년대 말까지도 외국 논문에 한두 편 정도 뇌수술에서 혈관내 수술이 쓰인 사례가 소개될 정도로 드물었다. 1998년 유럽 뇌수술 학회에 참석했던 이 교수는 바로 이 수술법을 접하고는 무릎을 쳤다. "바로 이 수술법이 앞으로 대세가 되겠구나 생각했죠. 바로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배웠습니다."

'혈관내 수술'은 원리는 간단하지만 효과는 놀랍다. 먼저 사타구니에 있는 대퇴동맥에 미세한 관을 집어넣는다. 미세관은 상반신을 관통하는 대동맥을 지난 뒤 심장대동맥을 거쳐 목을 지나는 경동맥을 통과해 뇌혈관에 도달한다. 의사에 따라 다르지만 이 교수는 대퇴동맥에서 뇌혈관까지 미세관을 집어넣는데 2, 3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30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이렇게 집어넣은 관으로 특수 백금코일이나 미세 수술풍선, 스텐트(혈관 확장에 쓰이는 미세한 금속망) 등을 통과시킨다. 혈관벽이 꽈리처럼 부풀어올라 자칫 터지면 숨질 수 있는 뇌동맥류도 치료하고, 막힌 뇌혈관을 뚫어 뇌출혈을 막아준다. 마취도 필요없고 소량의 수면유도제만 쓰면 된다. 개두술 환자가 중환자실에 2주 이상 머무는데 비해 혈관내 수술은 2, 3일이면 퇴원한다.

◆뇌수술 분야 혈관내 수술 개척자

"제게 오는 환자 10명 중 7명은 혈관내 수술로, 나머지는 두개골을 여는 미세현미경 뇌혈관 수술을 합니다. 환자에 따라 동맥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10년간 혈관내 수술만 1천200례 이상 해냈다. 새로운 수술법이 정착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2001년 처음 국내 학회에서 뇌혈관수술에 '혈관내 수술'을 적용한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그야말로 '박살'이 났습니다. 어떻게 검증되지도 않은 수술법을 쓰느냐며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이 교수에게 정말 힘든 시기였다.

그는 단지 새 수술법을 도입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2004년에는 신경외과 분야 최고 권위지인 '저널 오브 뉴로서저리(Journal of Neurosurgery)에 스텐트를 이용한 뇌동맥 재건술을 발표해 세계적 호평을 받았다. 2007년에는 같은 학술지에서 최우수논문상을 받기도 했고, 이후 그가 발표한 수십여편의 국내외 논문은 내용뿐 아니라 인용지수에서도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덕분에 처음 6명으로 시작했던 대한뇌혈관내수술학회 회원은 지금 150여명으로 늘었다. 10년 만에 비로소 혈관내 수술이 자리를 잡은 것. 지금껏 학회와 의사를 대상으로 혈관내 수술을 알려왔다면 앞으로는 환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줄 계획이다.

◆건강하게 퇴원하는 환자가 바로 기쁨

이 교수는 2002년 수술을 했던 당시 49세 남자 환자를 잊지 못한다. 뇌교에 중풍이 와서 반신마비가 왔고 언어장애까지 생겼다. 두 자녀를 둔 가장인 그에게 찾아간 병원마다 "앞으로 크게 잘못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약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 내로라하는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찮게 찾아온 그에게 이 교수는 새 수술법을 알려줬다. 환자는 수술 전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중에 수술이 끝난 뒤에 알았지만 그 환자는 유서를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인사를 하고 왔다.

"뇌교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곳입니다. 바로 이 숨골에 스텐트를 집어넣어 혈관을 확장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장애가 아니라 바로 목숨을 잃을 수 있었죠. 다행히 그 환자는 8년째 건강하고, 매년 한번씩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갑니다."

그는 믿음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합병증을 100% 막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평균 2% 정도 합병증이 생깁니다. 미세관이 동맥을 통과하면서 혈관 벽에 쌓인 혈전을 떼어내는 바람에 이런저런 합병증이 생깁니다. 인간이 수술을 하는 이상은 어쩔 수 없겠지만 늘 아쉽죠." 가족보다 환자와 함께 한 시간이 훨씬 많았던 의사. 이창영 교수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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