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 기획단장
"죽 대구에서만 살았던 터라 한 번쯤 서울 가보면 어떨까 싶어 올라왔지요. 잠깐만 있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오래 머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남산이 손에 잡힐 듯이 훤히 보이는 서울 충무로 사무실에서 만난 김기수(51)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기획단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잘 못 챙겨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간만에 '고향 까마귀'를 만나 반갑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김 단장은 대구 토박이. 김천 대덕면 출생이지만 갓난아기 때 대구로 이사오는 바람에 기억은 없다. "제가 7남매의 막내인데 형님, 누나들이 성장하면서 선친께서 대구로 나오셨습니다.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높을 때였죠.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은 정말 우리 아버지 세대의 교육열 덕분인 것 같습니다."올 초 취임한 김연수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바로 위의 형이다.
대구 서부초교·성광중·성광고·영남대를 나온 그는 1988년 행시 32회에 합격,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상경할 때까지 근무지도 경북도청이었다. 그의 말대로 대구시 경계를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처음 올라올 땐 솔직히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서울에 와서 일하다 보니 이제는 고향이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그는 2008년 연말 고위공무원단으로 승진하기 전까지 주로 행정안전부 지방자치 관련 부서에서 일했다. 자치제도과, 지방분권추진단, 지방조직발전팀, 자치행정과, 한국지역정보개발원 등을 거쳤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업무도 1999년 서기관 시절 맡았던 지방자치법 개정 작업을 꼽았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자치법을 고쳤죠. 원래 취지와 다르게 제도 도입 이후 현실적인 문제점이 많이 나타났거든요. 개정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여야 간에 의견이 조금씩 달라 거의 3년을 매달려야 했습니다."
지방행정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바라보는 지방선거는 어떤 모습일까. "지방자치의 본질은 주민 참여입니다. 또 주민 참여의 핵심은 바로 선거이죠. 일부 단체장, 의원의 비리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 게 사실이지만 지역을 이끌어나갈 올바른 지도자를 뽑는 것은 지역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친일재산조사위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 가운데 하나. 오는 7월 12일로 활동을 종료하는 한시적 기구다. 지난 4년간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비롯해 1904년 러일전쟁 개전 때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치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 450여명의 후손이 보유한 재산을 추적해왔다. 이 가운데 139명이 보유한 976만㎡를 국가에 반환하라고 결정했다. 공시지가로 따져도 821억원에 이른다.
"조사관들이 전국을 누비며 대상자의 제적부와 족보, 호적부 등을 일일이 조사해 가계도를 작성했습니다. 또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 토지조사부, 임야조사서 등 공문서를 모두 뒤졌죠. 소송을 내는 유족들도 있어 사실 환수에 어려움을 겪지만 친일행위자의 후손이라는 낙인을 더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역시 죄 짓고는 못 사는 모양입니다."
지천명(知天命)을 넘은 나이에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그는 낙천적인 성격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했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뒤에는 '밥벌이 삶'은 더 안 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대신 자연인으로서, 봉사를 하며 보낼 계획이다. 학교 다닐 때 즐겨 읽었던 무협지를 써볼 생각도 가끔 한단다.
"진짜 봉사가 필요한 분야가 뭔지 고민하는 모임을 지인들과 갖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노후대책이죠. 허허. 저의 원래 뿌리인 시골에 대한 연구도 요즘 합니다. 그래서 여행을 자주 다닐까 하는데, 여행기를 쓸 실력은 없지만 인생의 보람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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